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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 평판이 개판된 이유-교회 역사에 우연이란 없다-
종교와 진리 | 승인 2016.03.24 21:11
신성남

교황 '알렉산더6세'는 1431년 스페인 발렌시아 인근의 하티바에서 태어났습니다. 본명은 '로드리고 보르자'입니다. 그의 삶은 출생부터 특이합니다. 그의 어머니 '호아나'는 친오빠인 '알폰소 보르자'의 사이에서 그를 낳았습니다. 그러니까 교황의 친부는 아버지이면서 동시에 외삼촌이 되는 셈입니다.

 

로드리고는 어려서부터 난폭한 아이였는데 고작 12세의 나이에 친구를 칼로 살해하였고, 또한 문란한 사생활로 나중에 적어도 여섯 명 이상이나 되는 사생아의 아버지가 되었다고 합니다.

 

더욱 기가 막힌 일은 발렌시아의 대주교였던 그의 아버지는 나중에 '칼리스터스3세'로 불리는 교황이 된 후 당시 겨우 25세에 불과한 망나니 아들 로드리고를 발렌시아의 대주교라는 고위직에 임명했다는 사실입니다.

 

로드리고는 본래 어느 과부와 그녀의 두 딸까지 농락하며 살았는데, 후일 그 과부가 죽자 큰딸을 강제로 수도원에 보내고 더 아름다운 동생을 데리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1461년에는 18세의 미소녀 '로사'를 또 자기 여자로 만들었습니다.

 

사상 최악의 교황 '로드리고 보르자'

▲ 교황 알렉산더 6세

 

1492년 교황 '이노센트8세'가 죽었을 때, 로드리고는 막대한 재산을 팔아서 교황 자리를 사려고 하였는데 마지막까지도 한 표가 모자랐습니다. 그런데 그 한 표의 주인인 베니스의 한 수도사는 거액의 돈과 로드리고의 12살 된 딸 '루크레씨아'와 하룻밤을 자는 조건을 제시하였습니다. 물론 로드리고는 그 조건을 받아들였고 마침내 22명의 추기경들의 지지를 받고 새로 교황이 되었습니다.

 

그 후 로드리고는 자기 아버지의 전철을 따라 로사와의 사이에 태어난 17세의 아들 '세사레'를 또 발렌시아의 대주교로 임명하였고, 후일 15살이 된 둘째 아들 '후안'도 추기경으로 임명하였습니다. 그리고 교황이라는 성직에도 불구하고 바티칸 궁전으로 첩들을 불러 들였습니다. 심지어 자신의 근무처에서 창녀들을 불러다가 난교파티도 했다고 합니다.

 

아울러 교황이 되기 위하여 쓴 거액의 돈과 재산을 회수하기 위하여 온갖 사악한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였습니다. 자신의 부하들을 독으로 암살하고 재산을 빼앗기도 했습니다. 또한 그는 살인범들을 사형에 처하지 않는 조건으로 큰 돈을 받았습니다. 동시에 성직과 성물을 매매하였습니다. 그리고 돈을 받고 근친상간을 눈감아 주었습니다. 한 귀족은 많은 금판을 주고 자기 여동생과의 불륜을 허가받기도 했습니다. 발렌시아의 추기경 '피터 멘도자'는 교황에게 돈을 주고 미소년을 입양할 수 있도록 허가까지 받았습니다.

 

게다가 로사의 나이가 점차 많아지자 교황 로드리고는 미인으로 이름난 15세의 '귤리아 화르네스'를 위조죄로 걸린 그녀의 오빠를 사면해 주는 댓가로 손에 넣었습니다. 그는 '귤리아'와 '오르시노 오느시니'의 결혼식 주례를 해주고 신부를 자기방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소위 거룩한 교회의 교황이란 자가 초야권을 행사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는 신부의 오빠가 고위 성직을 얻기 위해 교황과 사전에 합의한 내용으로 그녀의 새신랑 오르시노도 동의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 덕분에 후일 그녀의 오빠 '알렉산더'는 추기경으로 임명되었는데, 종교 개혁자 루터와 칼뱅이 활동하던 시대의 교황 '바오로3세(1534-1549)'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

 

 

중세교회 잔혹사

그 당시 성병이 유럽 전역에 퍼져 마침내 교황청까지 침투하였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하나님께서 주신 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때 교황과 그의 아들 추기경 '세사레'는 물론 교황의 가족 및 첩들까지 총 17명이 불과 두 달 사이에 모두 매독에 걸렸다고 합니다.

 

결국 이에 격분한 플로렌스의 수도사 '지롤라모 사보나롤라'가 교회와 성직자들을 강력히 비난하고 나섰습니다. 교황은 즉시 함구령을 내렸지만 그래도 지롤라모가 듣지 않자 그에게 추기경 자리를 주겠다고 설득하였고, 그마저 거절당한 교황은 결국 그를 이단으로 몰아 화형에 처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피를 즐긴 교황의 아들 세사레는 자신의 용맹을 자랑하기 위하여 성베드로 성당 앞에 울타리를 치고 남녀 죄수들과 어린아이들을 끌어낸 후에 완전무장하고 말 타고 질주하며 칼로 찌르고 그래도 모자라서 말로 짓밟았습니다. 교황과 여동생인 '루크레시아'는 성당의 발코니에서 이를 보면서 즐겼다고 합니다. 성직자란 자들이 어찌 이처럼 악독할 수 있을까요.

 

그들은 성직과 성물을 가리지 않고 팔아 돈을 모았으며 또 자기들이 하는 일에 방해가 되는 사람들은 모두 암살하고 재산을 몰수했습니다.

 

그러다 드디어 1503년 8월 교황 알렉산더6세는 죽었습니다. 원래 교황 부자는 자기들이 싫어하는 한 추기경을 저녁에 초대하여 독살하려고 하였는데 그게 그만 잘못되어 도리어 그 독약을 자신들이 먹게 되었습니다. 아들 세사레는 간신히 살았으나 교황의 배는 불덩어리가 되고 눈은 새빨갛게 충혈되었으며 피부색은 노랗게 변해 사망하였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보다 자세한 내용을 더 알고 싶으신 분들은 조찬선 목사님의 저서 <기독교 죄악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아무튼 로드리고 보르자의 사후에 새로 등극한 교황 '율리오2세'가 "나는 보르자처럼 살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거룩한 교회를 더럽혔으며 악마의 도움을 받아 교황권을 탈취하였다. 앞으로 누구든지 보르자에 대해 두 번 다시 언급하거나 생각하는 것을 금지하며, 이를 어길 시에는 파문하겠다. 그리고 보르자 일족의 모든 무덤 뚜껑을 열어 그들의 시신을 당장 스페인으로 돌려보내야 한다."라고까지 말한 것을 보면 르드리게가 중세 최악의 교황이었슴은 분명한 듯 합니다.

 

▲ 성전의 상인들을 내쫓으시는 예수님, GIORDANO

 

교회 역사에 우연이란 없다

 

이런 엄청난 중세사를 보면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중요한 사실은 루터의 '종교 개혁'이 결코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교회 역사에 우연이란 없습니다. 당시의 교회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무법천지'에 '안하무인'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중세 교회가 그런 못된 짓을 하고도 안 망한다면 그게 오히려 더 기적일 것입니다.

 

물론 중세에도 신실한 수도사와 사제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또한 이미 루터보다 훨씬 전 시대에도 무수히 많은 성도들이 바른 신앙을 추구하며 불의한 교권에 저항하다가 처형을 당했습니다. 하지만 그때도 공교회는 항상 신도들에게 맹신적 '순종과 침묵'만을 강요했습니다.

 

그런데 과연 오늘날은 어떠한가요. 교권 남용, 성직 매매, 헌금 유용, 뇌물 수수, 교회재산 횡령, 성추행, 교회 세습, 권력 야합, 신도 우민화, 그리고 교회 사유화에 이르기까지 작금의 한국교회 일부 지도자들이 로드리게보다 더 나은 것이 무엇입니까. 역사는 다시 반복하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지금 우린 현대판 '로드리고'를 변절한 여러 교회들에서 날마다 보고 있습니다. 아무리 보아도 생도적이 분명한데 중세 교회처럼 법으로도 쉽게 치리할 수 없는 '교황적 담임목사'들이 너무 많습니다.

 

아울러 횡령한 자, 표절한 자, 학력 위조한 자, 성추행한 자, 그리고 세습한 자들이 여전히 교회를 장악하고 주마다 '한국교회 잔혹사'를 새로 추가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맹신의 잠에 취한 많은 신도들은 이들을 교주나 무당처럼 추종하며 자나깨나 '만사형통'의 복을 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제 남은 것은 오직 '망하는 길'뿐이라는 지극히 비관적 결론이 대세가 된 상황입니다. 만성적인 '교회 부패'와 '목회 비리'로 인해 한국 사회에서 개신교의 평판이 이처럼 개판이 되었는데 무슨 전도가 되겠습니까.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할 교회가 오히려 세상의 짐이 되고 있으니 새신자가 제대로 늘 리가 없는 것입니다.

 

사실 이제라도 진정으로 평판을 좋게 회복하려면 철저한 자기 반성과 뼈아픈 개혁을 해야 옳은 순서이건만, 어떤 자들은 도리어 개혁에 저항하며 비리를 덮고 오로지 거룩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만 나누자고 합니다. 작은 손바닥 두 개로 하늘을 가리자는 잔수이지요.

 

그러나 이는 마치 양의 탈을 쓴 늑대가 발톱을 숨기고 양들을 계속 약탈하겠다는 수작과 무엇이 다를까요. 속은 썩었는데 이를 감추고 깨끗한 척 하자는 행위는 여전히 속이며 노략질을 하겠다는 말과 다름이 없습니다. 이러니 중세 교회와 바리새인의 교회처럼 '자정 능력'을 상실하고 몰락을 피하기 힘든 현실이 된 것입니다. 이단은 설치고 정통은 헤매니 정말 어쩌자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니오'가 실종된 교회

 

사정이 이토록 급박하건만 아직도 "듣기 좋은 말만 하라"고 꾸준히 요구하는 분들이 제법 많습니다. '예'만 하고 '아니오'는 가급적 하지 말라고 합니다. 부정적인 말로는 교회와 세상을 바꿀 수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긍정적인 격려만이 사랑을 지키고, 화평을 유지하고, 교회를 살리고, 그리고 교회의 덕을 세우는 최상의 방법이라고 합니다.

 

최근 포항의 한 대형 교회는 지난 14년간 무려 147억 원의 공금을 빼돌렸다고 합니다. 게다가 무려 3300억 원 규모의 연금재단 기금으로 특정 브로커를 통해 카지노 업체, 부도직전 건설사 등을 상대로 고금리 대부업을 해 온 재간둥이 목사님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무등록 불법 브로커는 업체들로부터 중개수수료 명목으로만 25억 4200만 원이나 받아 챙겼다고 합니다. 이러니 알려지지 않은 뒷거래는 또 얼마인지 상상조차 하기 싫은 실정입니다.

 

그러면 이런 사실들도 부정적인 이야기이니 성도들은 무조건 모른 척 침묵하고 구경만 해야 할까요. 도적을 보면 즉시 알려서 잡아야 도적질이 줄어드는 것이지, 반대로 도적을 안전하게 숨겨주고 따뜻하게 보호해 주어야 도적질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건 진정한 용서와 사랑이 아니지요.

 

마른 하늘에 이런 생도적질을 직접 보면서도 도대체 왜 침묵하라는 건지 보통 상식의 교인들은 그 속내를 정말 이해하기 힘듭니다. 아니면 유달리 어떤 목회자들은 동업자들의 권리와 이익을 사수하기 위한 별도의 무슨 '비밀 노조'라도 따로 있는 것인지요.

 

과연 구약의 선지자들이 정말 긍정적인 말을 주로 했던가요. 아니지요. 주로 죄를 지적했습니다. 더구나 십계명 중 무려 8개가 "하지 말라"하는 부정적인 명령입니다. 그런데 부정적인 말을 피하기 위해서 도적질, 탐심, 간음, 우상숭배를 그냥 방조하고 묵인해야 하나요. 저들의 주장은 듣기에는 매우 달콤하지만, 마치 회생 불능의 당뇨 환자에게 설탕만 마구 퍼먹이자는 돌팔이 처방일 뿐입니다.

 

긍정과 부정은 마치 물과 불처럼 적재적소에 모두 필요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목회자들이 부정에는 거의 입을 다물고 주야장천 긍정을 노래하니 할 수 없이 어떤 성도들은 긍정적인 말 대신에 부정적인 쓴소리를 자주 하게 되는 것 아닌가요.

 

필자가 부끄러운 중세사를 새삼스럽지만 여기에 다시 장황하게 언급한 이유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중세 교회는 '예'만 좋아하고 '아니오'를 끝까지 묵살하다가 망한 교회라는 것입니다.

 

사실 지난 수십 년간 이미 우리는 '예'를 충분히 많이 했습니다. 부정과 비리는 가능한 숨기고 긍정적인 설교와 따뜻한 격려와 듣기 좋은 자화자찬을 매우 넘치도록 나누었습니다. 온라인에 가득한 여러 유명 목회자들의 설교를 한번 들어보십시요. 축복과 만수무강이 아주 절절히 넘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 열매는 매우 부실하고 실망스러울 뿐입니다. 오히려 한국교회는 과거보다 더욱 어두워졌습니다. 왜냐 하면 그 '긍정적'이라는 것들을 단지 '거품 성장'과 '종교적 야망'에 이용하며 배를 불리는 사특한 무리들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성경의 위대한 성도들은 '예'와 '아니오'를 분명히 한 사람들입니다. 때로는 '아니오' 그 한마디로 인해 광야로 가기도 하고, 감옥에 가기도 하고, 톱질을 당하기도 하고, 그리고 사자의 굴로 갔습니다.

 

 

심은 대로 거둔다

 

중세 교회는 적어도 겉모습으로는 모든 것을 잘 갖춘 훌륭한 교회였습니다. 웅장한 교회당과 큰 수도원과 긴옷을 입은 성직자와 구름같이 많은 신도 등 거의 모든 것을 완벽하게 소유한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그런 조건들이 교회의 타락과 부패와 몰락을 막아주지는 못 했습니다.

 

따라서 '어떤 경우든 교회는 결코 안 망할 것'이라는 일방적 생각은 대단히 안일한 오만입니다. 그리스도에게 속한 '무형 교회'는 영원하나, 지상의 '유형 교회'는 언제든지 망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직접 세운 '예루살렘교회'마저 제대로 피지 못 하고 망했는데 하물며 한국교회는 특별히 대단한 무슨 생명보험이라도 들고 있는지요.

 

다행히 아직 우리 주변에 신실하신 목사님들과 경건하고 충성된 직분자들이 적지 않습니다. 한국교회의 마지막 희망이지요. 그러나 그것으로 자족하고 방심하면 안 될 것입니다. 먼저 교인들이 기복과 맹신의 헛된 꿈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사도인 바울조차 자신을 '죄인 중에 괴수'라고 했습니다. 하물며 우리처럼 더 연약한 죄인들이 모인 오늘날의 교회는 또 오죽할까요. 차라리 '괴수들의 공동체'라고 불러야 마땅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만일 거기에서 '아니오'가 없이 무작정 '아멘'만 남발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그게 바로 요즘 여러분이 보고 있는 한국 개신교의 적나라한 모습입니다.

 

우리는 지금 교회가 문을 닫는 슬픈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기독교인들은 당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가장 큰 원인은 결국 우리 자신에게 있슴을 인정해야 합니다. 심은 대로 거두고 있는 것이니까요.

 

2000년 교회사가 증거해 주는 뼈아픈 교훈은 명백합니다. '아니오'를 상실한 교회는 반드시 무너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국교회 역시 결코 예외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을 진정 두려워해야 합니다. 신도들을 우민화하여 불의한 교권을 흔들며 부정과 타협하는 교회는 더 이상 '거룩한 교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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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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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iki 2020-06-10 09:48:35

    어려운 문제입니다. 당장은 아마도 죽기 전까지 성도의 세가 급격히 줄어드는 것을 보지는 않을 것입니다. 부정부패로 지탄받고 성도들에게 고소당하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뭐든지 할 수 있는 것이지요. 물론 앞으로 10년 혹은 20년 후에는, 이대로 가면 망합니다. 하지만 거기까지 보지 않습니다. 당분간은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니까요. 더군다나 벗으라면 벗고 내놓으라면 내놓는 목사 말에 껌뻑 죽는 성도들이 부지기수이니, 그들이 함께 멸망하지 않는 이상 개혁은 없다고 봅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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