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주요뉴스
장애인에 대한 인식개선 절실한국교회, 복지정책 전환 시급

생명의 소리가 대지를 울리는 4월이다. 언 땅이 녹아 파릇한 새싹이 돋아나는 소리, 개울가에 살얼음을 제치고 힘차게 용틀임하는 소리, 청명한 하늘을 휘휘 날아가는 바람소리 등 온 세상이 희망찬 소리로 가득 메운다. 하지만 4월이 반갑지 않은 이들도 있다. 웃음의 소리보다 울음의 소리로 가득한 이들. 바로 장애인들이다. 과거에 비해 많은 부분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낳아졌다고 하나, 아직도 갈 길이 먼 상황이다. 국가가 정해놓은 장애인의 날이 무색할 정도로 장애인들은 사회적 편견 속에 지금 이 순간에도 힘겨운 하루를 보내고 있다. <편집자주>

◆장애인에 대한 인식개선 절실=해마다 4월 20일은 국가가 정해 놓은 장애인의 날이다. 하지만 장애인의 날이 무색할 정도로 장애인에 대한 행사나 관심은 극히 미약한 실정이다. 문제는 사회적 관심뿐 아니라, 한국교회 안에서도 장애인에 대한 관심이 점점 감소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만큼 장애인들은 이 땅 어디에도 발붙일 곳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

과거 한국교회는 장애인들의 인권과 복지를 위해 다양한 행사를 준비하고, 그들의 삶의 질 개선을 위해 각고의 노력을 다했다. 그들의 손과 발이 되어 장애는 더 이상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몸소 증명해 보였다. 연일 훈훈한 감동의 소식이 전해졌고, 장애인들도 한국교회를 향해 닫힌 마음의 문을 열었다. 말 그대로 한국교회는 장애인들과 일반인들을 연결해주는 가교역할을 다했다.

그러나 최근 한국교회의 장애인에 대한 관심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심지어 1년 365일 중 단 하루인 장애인의 날에도 특별한 행사나 관심을 보이지 않는 지경에 처했다. 더 이상 장애인들은 한국교회에 있어 독특한 존재가 되지 않았다. 단 하루도 장애인들과 고통을 나누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려는 노력을 다하지 않고 있다.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최악인 셈이다.

안타깝게도 한국사회는 장애인에 대한 인식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아직도 길거리를 지나가면서 장애인을 보면 눈살을 찌푸리고, 휠체어를 타고 지나가는 장애인들이 힘든 상황에 처해도 쉽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그들이 도움을 요청이나 하지 않을까 속으로 맘을 졸이고 있다. 교회 안에서도 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많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아직도 장애인과 예배를 드리는 것을 꺼리는 교회도 있으며, 장애인들이 쉽게 오갈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춘 교회를 찾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겉으로는 장애인에 대한 배려를 하는 듯하지만, 정작 장애인들이 맘 편하게 교회를 다닐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오히려 장애인들이 두드리는 노크소리마저 듣지 못했다. 자신은 장애와 무관하니 장애인들이 어떠한 상황에 처해있어도 본인이 갈 길만 가면 된다는 생각이다. 우리와 함께 살아가야 할 사람이라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이중적인 인식과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사회는 결코 정의로운 사회라고 할 수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산업재해와 교통사고, 약물 오남용, 환경오염, 의료사고 등 후천적 장애인이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이는 비장애인도 언제든지 장애인으로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다시 말해 장애인에 대한 시급한 인식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누구나 후천적으로 장애인의 길을 걷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현재는 아니지만 불시에 사고를 당해 장애인이 됐을 때 비로소 장애인에 대한 인식개선을 외쳐봤자 그때는 후회만 커질 뿐이다.

◆한국교회의 복지정책 거듭남 필요=이렇듯 한국사회 속에서, 한국교회 안에서 장애인들의 삶의 질은 크게 뒤떨어져 있다. 따라서 한국사회와 교회는 그들의 삶의 질을 개선시키기 위한 다양한 복지정책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한국교회는 장애인들의 권익을 위한 사업은 물론, 복지적인 측면에서도 다각도로 사업을 구상할 시기이다. 그리고 장애인들을 위한 선교가 더 이상 자선이나 선행을 드러내기 위한 수준에 그치지 않고, 그들의 고난과 역경을 함께 짊어지고 가려는 자세가 절실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교회가 장애인들과 같이 걸어가고 있음을 인식시켜야 한다. 누구나 장애인들과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지속적인 홍보활동을 통해 심어줘야 한다. 더 이상 이 땅에 소외당한 장애인이 상처받지 않도록 한국교회가 먼저 솔선수범의 자세를 보여야 한다.

무엇보다 한국교회는 교회 스스로의 노력을 넘어서 정부가 장애인에 대한 실질적인 복지정책을 시행하도록 압박을 가해야 한다. 장애인에 대한 복지정책을 입안하고, 시행할 것을 요청해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에 화합과 일치의 물꼬를 터야 한다. 그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도움의 손길을 건네야 한다.

실제로 지난해 장애인의 날 종각 네거리는 장애인들의 시위현장으로 변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소속 200여명의 장애인들은 ‘장애인 부양의무제’ 폐지와 장애인등급제 폐지를 강력히 주장하며 시위를 벌였다. 지체장애인, 자폐장애인들이 참여한 시위는 종각 네거리에서 보건복지부가 새들어 있는 현대사옥까지의 1킬로미터를 힘겹게 걸으며 자신들의 요구사항이 관철될 수 있기를 촉구했다. 일반인들도 걷기 힘든 거리를 이들은 휠체어에 몸을 의지한 채 진압에 나선 의경들과 몸싸움까지 불사하면서 전진했다. 하지만 그 자리에 있어야할 한국교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처럼 장애인들은 비록 몸은 불편하지만 그들의 권리를 회복하기 위해 애쓰고 있으며, 그들 자신이 사회 속에서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한 각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교회도 이들의 권리를 보호하고, 나아가 이들이 삶의 주체가 되어 사회 속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정부와 함께 대책을 마련하는데 앞장서야 한다. 때로는 정부를 향해 쓴 소리도 내뱉을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의 복지정책이 국가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길을 닦아야 한다.

◆교회 안에서의 노력=그동안 한국교회는 교인 수로나 교회 외적인 모습에서 있어 놀라운 성장을 이뤘다. 하지만 이들 교회에 장애인들을 위한 편의시설은 턱없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대형교회 몇몇을 살펴봐도 장애인들이 불편한 몸을 이끌고 교회의 문턱을 넘기에 힘든 지경이다. 휠체어에 의지해서 자유롭게 왕래가 가능한 교회는 정말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교회의 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얼마나 부족한 지 쉽게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따라서 이제부터라도 한국교회는 장애인들이 쉽게 교회를 왕래할 수 있도록 경사로를 만들고, 점자블럭과 자동문, 장애인 전용 화장실, 음향 신호기 엘리베이터 등을 설치하는데 아낌없는 투자를 해야 한다.

이와 함께 한국교회는 사회 속에서 장애인이 평등한 참여와 평등한 사회를 지향할 수 있도록 정책방안을 모색하며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 장애인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한 형제자매임을 고백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각 영역에서 노력해야 한다. 아울러 장애인들이 일할 수 있는 작업환경을 교회 스스로 만들어 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장애인들에게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만큼 획기적인 방법은 없다. 그들이 스스로 경제력을 갖춘다면 사회 속에서도 장애인들은 누구의 도움없이 스스로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다.

유종환 기자  yjh4488@hanmail.net

<저작권자 © 기독교라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유종환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기독교라인  |  등록번호: 서울, 아04237  |  등록·발행일자: 2016년 11월 23일  |  제호: 기독교라인  |  발행인: 유달상  |  편집인: 유환의
청소년보호책임자: 유환의  |  발행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동순라길 54-1, 3층(인의동)  |  02)817-6002 FAX  |  02)3675-6115
Copyright © 2021 기독교라인.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