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칼럼
몸의 부활을 믿는가?황호관 목사
기독교한국신문 | 승인 2013.03.27 13:08

   
▲ 황호관 목사
부활주일이 눈앞이다. 내 마음에 깊이 자리 잡은 은사한 분이 들려준 이야기이다. 종교 문제로 인하여 고민하고 갈등하던 청년기에 큰 아버지의 서재에서 종교에 관계된 책들을 읽기 시작했단다. 책에서 진리를 찾기 위한 청년의 몸부림이 시작된 것이다. 상당히 많은 책을 읽었지만 답은 없었다. 고민하는 그에게 서재의 주인께서 ‘그러지 말고, 그 정력 가지면 나 같으면 성경을 읽겠다.’고 권하시더란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성경을 읽기 시작했고, 성경을 읽는 중에 다른 책이나 경전에서 읽을 수도 들을 수도 없었던 단 한 개의 단어를 발견했는데 <부활>이라는 말이었더란다.

그래서 부활의 종교를 갖는 동기가 되었다는 그런 이야기이다. 그렇다. 부활은 기독교 복음의 진수요, 우리 믿는 이들의 최종소망이다. 그런데 성경이 가르치고 증언하는 부활이 오염되거나 오해되고 있다. 성경이 증거 하는바 부활은 사상의 부활 내지는 정신의 부활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부활의 계절에 예수의 사상과 정신이 부활되기를 바란다는 식의 메시지는 성경적 부활을 왜곡할 위험이 다분하다.

영의 부활도 물론 아니다. 부활을 믿겠다. 그러나 몸의 부활은 아니라고 말한다면 바른 부활신앙은 아니다. 예수님은 그 날에 몸으로 부활하셨다. 영은 볼 수 없으되 부활하신 예수를 여인들과 제자들은 보았다. 영은 먹을 수 없으되 부활하신 예수님은 잡수시었다. 미국의 명분대학에서 공부를 마치고 박사학위를 받고 신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가 연구한 것은 고대 중동지방의 언어에 관한 것이다. 아브라함 시대의 토판을 해독하는 그런 학문이다.
 
그래서 종종 목사님들의 모임에 불려 나가서 그 방면의 이야기를 나누는 기회를 갖는데 한 번은 자기의 귀를 의심하는 사건을 겪었다면서 들려준 내용인즉 목사님가운데 한 분이 성경을 치켜들고는 이제는 거짓말 그만하고 사실을 말하자면서 열을 올리더라는 것이다. 그 사실이라는 것이 “예수님의 부활”이었고, 예수님의 몸의 부활을 솔직히 안 믿으면서 부활절마다 예수 살아나셨다고 설교하는 것은 양심에 부담이 되지 않으냐는 항변 아닌 항변을 하고 있음을 목격하고 기가 막혔다는 내용이었다. 이미 오래전 얘기다. 벌써 30여 년 전부터 신학에 이런 사상이 가만히 들어 와 자리를 잡고 있었다는 반증이다. 지금은 어디까지 와 있을까를 생각하면 답답하다. 예수님은 몸으로 부활하셨다. 우리도 그렇게 부활 할 것이다. 이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진정한 부활이 아닌가?

기독교 계통의 대학에서 가르치고 있는 장로 교수의 푸념 같은 말씀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자유주의 신학의 신무기로 무장한 신식 교수들 왈, ‘골통 보수신학은 아직 때를 벗지 못해서 옛날, 구식 얘기만 하고 있다.’는 식으로 비아냥거리더란다. 그들을 향한 시원한 응수 “자유주의 신학은 아직 팬티도 벗지 못했다.” 팬티를 먼저 벗어야 때를 벗을 것이 아닌가! 성경에 없는 부활을 말하고 가르치는 것이 때 벗은 표라면 나는 죽을 때까지 팬티를 벗지 아니하리라. 예수님의 몸의 부활을 믿을 뿐만 아니라 그 날에 있을 몸의 부활을 굳게 믿으니까.
 

개혁총회 전 총회장, 본보 논술위원
 

기독교한국신문  webmaster@cknews.co.kr

<저작권자 © 기독교라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독교한국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기독교라인  |  등록번호: 서울, 아04237  |  등록·발행일자: 2016년 11월 23일  |  제호: 기독교라인  |  발행인: 유달상  |  편집인: 유환의
청소년보호책임자: 유환의  |  발행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동순라길 54-1, 3층(인의동)  |  02)817-6002 FAX  |  02)3675-6115
Copyright © 2021 기독교라인.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