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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로 부르지 않았다하태영 목사
기독교한국신문 | 승인 2013.03.20 10:45

   
▲ 하태영 목사
20세기 미술혁명을 일으켰다는 피카소의 그림은 당시로서는 치졸하기 이를 데 없었다고 한다. 그는 마치 어린 아이가 그림을 그리듯이 조잡하게 그렸다. 사람들은 그가 미쳤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나는 어린애같이 그리는데 반세기가 걸렸다”고 했다. 당시 사람들은 그림이란 눈에 보이는 대상을 사실적으로 그려야 잘 그리는 그림으로 여겼다. 피카소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사물의 보이지 않는 내면세계를 그렸다. 당대 최고의 미녀를 모델로 그린 그림이 그의 화판에는 세상에서 가장 추한 얼굴로 그려졌다. 내면의 세계를 그렸기 때문이다.

예수님 당시에 지체 높은 사람들 대부분이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살았다. 예수께서는 그들 중에서 단 한 사람도 당신의 제자로 이끌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모두 머리 좋고 영리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예수의 제자로 따라 나선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대부분이 갈릴리 어부 출신이다. 예루살렘의 시각으로 보면 모두 낙오자들이다. 예수께서 그런 사람들을 불러내어 세상을 변화시키는 이들로 삼았다는 게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사도 바울이 터득한 진리가 그러하다. 그는 예루살렘 중심에 있었고, 예루살렘 중심의 사고에 철저했다. 진리 앞에서는 한 치의 양보도 없었던 사람이다. 십자가에 달린 메시아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 바울에게 고난받는 메시아는 혁명 그 자체이다. 세상을 보는 눈이 뒤집어진 것이다. 어린애처럼 순수한 열정을 지니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신앙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않고 그 내면을 본다. 신앙 안에서는 높은 사람도 없고 낮은 사람도 없다. 그리하여 바울은 주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 “육체”로 부르지 않았다고 말한 것이다(고전 1:26-31). 신분, 사회적 지위, 용모, 영리함, 자기중심적 사고 등 가시적인 것을 보고 부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삼일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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