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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은 어디서 오는가?하태영 목사
기독교한국신문 | 승인 2013.02.27 11:01

   
▲ 하태영 목사
“여호와께서 이 산에서 만민을 위하여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맑은 포도주로 연회를 베풀어주시리라”(사 25:6).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그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사 25:8).

이 두 말씀에는 각기 다른 역사적인 사건이 배경으로 깔려 있다. 하나는 이스라엘 아하스왕 때 시라아-에브라임 전쟁이고, 다른 하나는 유다의 히스기야왕 때 앗시리아가 예루살렘을 짓밟은 치욕이다. 모두가 전쟁의 참화로 인한 고통과 슬픔으로 얼룩진 사건이다. 백성들은 희망을 잃었고, 살아남은 이들은 고통스런 날들을 살아야 했다. 죽고, 빼앗기고, 흩어지고, 포로로 끌려감으로서 어둡고 답답한 생활의 연속이었다. 이런 질곡 가운데서 이사야는 희망의 메시지를 선포한 것이다.

물론 현실 이야기는 아니다. 묵시적인 상상력이 담긴 기쁨의 연회이다. 인간의 불성실함과 진실치 못함이 재앙을 불러들였음에도 하나님의 성실하심과 진실하심이(사 25:1) 고통으로부터 구원해 주시리라는 희망의 메시지인 것이다.

인간은 본시 성실치 못한 종족이다. 자만심과 망각은 인간의 특징이기도 하다. 뿐만이 아니다. 자기가 지은 죄를 기억하지 못하고 되풀이하는 존재이다. 이런 인간이 하나님의 성실하심과 진실하심을 기억해 낸다는 것은 여간 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희망은 바로 하나님의 성실하심에 대한 자각에서부터 싹튼다고 볼 수 있다.

이사야의 눈에 비친 이스라엘의 고난의 역사는 포도주처럼 숙성시켜야 할 보배였다. 포도주는 오래될수록 불순물과 찌꺼기가 녹아 맑고 투명해진다. 오래 될수록 맛과 향이 좋아진다. 그래서 신앙의 눈으로 본 고난의 역사는 마치 포도주를 담그는 것과 같다. 지금 우리가 사는 방식은 어떤가. 분명 포도주를 담그는 방식은 아니다. 조급할 뿐이지 인생과 역사를 숙성시키는 지혜가 모자란다. 포도주를 마신다는 것이 늘 찌꺼기가 섞인 쓴 포도주만을 마신다. 그래서는 안된다.
삼일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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