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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욕적인 역사의 중심에 기독교의 지도자들이 있었다일제하 기독교회사 민족민중사관으로 재평가 절실
기독교한국신문 | 승인 2013.02.25 10:36

치욕적인 역사의 중심에 기독교의 지도자들이 있었다
 일제하 기독교회사 민족민중사관으로 재평가 절실

 “한국기독교의 지도자들이 일제의 황민화정책에 쉽게 무너져, 신사참배를 결의하는 잘못을 범했다. 신사참배는 한민족의 정신을 말살하고, 일황을 위한 우상숭배였다. 분명 한국교회는 스스로 이단이 된 것이다. 또한 기독교의 지도자들은 대한의 아들과 딸들을 일본군에 팔아넘겼다. 또 군자금도 모아 일황에게 받쳤다. 여기에 굴복하지 않은 교인들은 만주로 건너가 독립군에 가담, 무장투쟁을 벌였다”

줄줄이 일본제국주의에 굴복
 
 <1면에서 계속>
 일제의 가혹한 탄압을 피할 수 없었던 한국기독교의 지도자들은 일제의 황민화정책에 쉽게 무너졌다. 황민화정책에 굴복한 기독교의 지도자들은 “교회를 지키기 위해서 신사참배를 우상숭배가 아닌 국민의식으로 생각하고, 신사참배에 참여 했다”고 항변하고 있다. 하지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신사참배가 한민족의 정신을 말살하고, 일황을 위한 우상숭배였다. 한국기독교의 지도자들이 일제의 황민화정책에 쉽게 무너지고 있는 사이 기층민중들은 정신대로, 일본군인으로 끌려가 수모를 당하는 아픔을 겪었다. 또 농업농민들은 국내에서 발을 붙이고 살 수가 없어 만주 등으로 이주, 유랑민으로 생활하거나, 독립군으로 나라의 독립을 위해 무장투쟁에 나섰다.


신사참배는 평양 숭실전문 및 중학교, 숭의여학교 등 기독교학교들이 제일먼저 참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감리교를 비롯한 천주교 등도 일제의 조선총독부의 명령에 굴복했다. 신사참배에 대해서 강경한 입장을 보이던 남장로교 선교부도 얼마안가 무너졌다. 감리교회는 1937년 9월 천주교회와 함께 자진해서 신사참배를 결의했다. 총리사 양주삼 명의로 신사참배를 독려하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 교회가 민족의 치욕적인 굴복에 앞장섰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일본제국주의자들의 신사참배에 대해서 노골적인 강요가 있었던 1938년 조선예수교장로회  평양노회가 최초로 신사참배를 국가의식으로 결의했다. 한마디로 한국교회가 한민족임을 스스로 부정하고, 일황을 하나님과 동등한 신으로 인정하는 결과를 불러 일으켰다. 같은 해 9월 9일 장로교 총회가 개최될 때까지 전국 23개 노회 중, 17개 노회가 평양노회를 이어 신사참배를 결의했다.


장로교 제27회 총회는 총독부의 앞잡이인 ‘평양기독교친목회’의 각본대로 평양, 안주, 평양노회의 대표를 불러 신사참배 결의안을 제안, 동의, 제청토록 강요하고, 내약을 받았다. 따라서 제27회 총회는 일경의 포위 속에 열려, 조작된 각본대로 신사참배를 결의했다. 또한 신사참배에 참여하도록 독려하는 내용의 성명서도 발표했다.


당시 평양노회장은 3개 노회 32명을 대표해서 ‘일본국민으로서 당연한 의무’라고 역설, 한국기독교 지도자들이 스스로 한민족임을 부인하고, 이단종교로 변질되는 결과를 불러일으켰다. 한마디로 민족과 하나님 앞에 큰 죄를 저질렀다. 이 같은 장로교의 신사참배 결의는 해방 후 조선예수교장로회가 고신측과 분열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민족과 하나님 앞에서 큰 죄인

 이 뿐만이 아니다. 1938년 4월 25일 한국기독교는 “40만 십자군병들아 다같이 일어나 총후보국의 보조를 맞추자”는 슬로건을 내걸고, 경성기독교연합회를 결성, 내선일치, 황민운동의 전개를 다짐했다. 이 연합회의 위원장은 일본인이었으며, 정춘수를 비롯하여 김우현, 차재명, 구자옥, 김종우, 장홍범, 강병주, 김종호, 양주삼, 윤치호, 이명식, 이춘호 등 기독교지도자 60명이 참여했다. 


중앙의 교회들이 이렇게 일제에 굴복하면서, 지방의 교회들도 일제에 속속 굴복했다. 38년 7월 7일 조선기독교연합회가 조직되었다. 이 조직은 일본인과 한국인이 참여했다. 또한 연희전문학교 오케스트라까지 동원, 무너지는 한국기독교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냈다. 여기에는 김활란을 비롯한 양주삼, 유옥경, 윤치호, 함태영, 김우현, 차재명, 유억겸, 오경선, 윤성순 등 80여명이 참여했다.


이밖에도 기독교일본화를 위한 기독교청년연맹위원회(신공숙, 언드우드, 윤치호, 유억겸, 오경선 등)가 창립되었다. 그리고 1938년 김종우, 양주삼, 김길창, 오택기, 이명식 등 5명은 전조선기독교 대표로 일본 이세신궁을 참배했다. 또한 감리교의 신흥우, 양주삼, 유형기, 이윤영, 정춘수, 김영섭, 윤치호 등은 내선감리교의 합동을 논의하기 위하여 일본을 방문했다.


일제치하에서 한국기독교의 공적기관은 모두 일본에 굴복했다. 그리고 기독교의 황국화에 앞장섰다. 뿐만 아니라 한국기독교의 지식인들 중 일부는 대한 아들과 딸들을 일본제국주의에 팔아 넘겼다. 자진해서 청년들을 향하여 일본군대에 입대할 것과 정신대로 나갈 것을 거리를 누비며, 연설하고 다녔다. 또한 교인들에게 일본제국주의자들의 아시아침략을 정당화 해주기 위한 헌금도 모아 군자금으로 일황에게 받쳤다. 군자금 모금은 한국교회가 모임을 가질 때마다 이루어졌다.


해방 68년을 맞은 오늘까지 기독교의 지도자들은, 잘못된 역사에 대해 반성하기는커녕, 이를 정당화하는데 급급하고 있다. 그것은 해방 후 기독교의 기득권자들이 교권을 장악하고, 교회를 좌지우지 했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 또한 한국기독교가 친일행각을 벌인 지도자들을 청산하지 못한 결과이다. 친일행각을 벌이고도 한국기독교의 지도자들은 자숙하기는커녕, 교회의 분열과 갈등을 앞장섰다. 한국기독교는 이들에 대해서 관대했고, 교회의 지도자로 추앙을 받았다.


이는 또 성장제일주의와 맘몬사상을 만들어 냈고, 교회의 지도자들이 정치권력의 주변을 맴도는 결과를 불러 일으켰다. 특히 한국교회사가 교권주의자들 중심의 역사를 기록하면서, 3.1운동을 비롯한 독립운동의 주체였던 기층민중들은 소외되고, 교권주의자 중심의 ‘분열의 역사’를 다시 쓰는 오류를 범했다. 치욕의 역사에 대해 침묵하며, 마치 일본제국주의 아래서 한국의 기독교가 중심에 있었던 것처럼 포장하여 역사를 왜곡하는 결과를 불러 일으켰다.

민족 앞에 먼저 사죄의 모습을 보여야

 한국기독교 지식인들 역시 앞을 다투어 일본제국주의에 굴복했다. 3.1운동의 지도층이라는 인사들 역시 이 길을 택했다. 3.1독립선언문에 참여한 33인중 17인이 기독교인이었다고 크게 떠들 일도 아니다. 한마디로 민족의 양심을 지킨 지식인들은 그리 많지가 않았다. 최남선, 이광수, 최 린 등 민족대표 33인은 일본제국주의의 악랄한 회유와 협박에 굴복했다. 최 린 등은 신민사관을 수립하는데 깊숙이 참여하기도 했다.


일제의 탄압 속에서도 조선기독교의 항일투쟁은 계속되었다. 길선주 목사 등 일부 기독교지도자와 기독여성, 농업농민들은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죽음을 택했다. 지식인과 유랑민들은 만주로 건너가 독립군이 되어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또한 대부분의 중고등학교와 전문학교가 앞장서서 신사참배를 결의하는 가운데서도 전라도 지방의 일부 기독교학교가 신사참배를 거부, 민족의 자존심을 지켰다. 또 한국기독교의 체면을 세워 주었다. 수피아여고를 비롯한 광주숭일고, 목포영흥중, 정명여중 등이며, 이들 학교는 신사참배 거부로 인해 폐교되는 아픔을 겪었다.


한국기독교지도자들과 지식인들이 일본제국주의에 굴복하면서, 그 자리를 가난하고 소외된 기층민중들로 채워졌다. 3.1운동의 발로는 민족대표 33인이었지만, 만세운동을 주도하고 행동으로 옮긴 주체는 교회와 사회의 제도에서 소외된 여성과 농업농민, 학생, 유랑민이었다. 이러한 기독교의 역사는 한국기독교의 기득권자와 교권주의자들에 의해 거의 묻혀버렸다. 대부분의 기독교의 바른 역사는 민족민중사관에서 편찬된 한국현대사와 근대사에 의해서 재평가되고 있다. 이제 한국교회도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고, 독립운동의 주체였던 교회의 부녀자와 농업농민, 학생, 유랑민 중심의 역사를 새롭게 정리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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