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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만세운동의 중심에 가난한 교인들이 있었다”3.1절특집-굴절된 한국기독교의 역사 바로잡자
기독교한국신문 | 승인 2013.02.20 17:35

“3.1운동의 주체였던 기독 여성과 거리를 방황하던 유랑자들은 철저하게 소외되어 왔다. 당시 한국기독교 여성들은3.1만세운동의 주체였다는 사실에 대해서만큼 재평가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센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기독여성들이 한국교회사와 민족사에서 소외되고 있는 것은 당시 봉건적인 우리사회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 주고 있다”

잘못된 역사 청산 중요

<1면에서 계속>

그동안 한국교회는 성장제일주의에 집착한 나머지 굴절된 과거사를 정리하고 다듬을 여유도 없이 숨 가쁘게 달려왔다. 그러다 보니 한 번도 제대로 지난 과거의 잘못된 역사에 대해 반성할 기회조차 없었다. 또한 과거의 잘못된 역사에 대해 청산하지 못한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따라서 오늘날 한국교회가 바로서기 위해서는 과거의 잘못된 역사에 대해 반성하고, 바로잡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에 대한 지적의 목소리는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한마디로 과거의 잘못과 오류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역사를 바로잡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교회가 잘못된 역사를 청산하지 못하고 있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해방이후 정부가 친일파들을 청산하지 못한 것과 교회의 지도자 대부분이 친일행각을 벌여 자신의 잘못을 드러낼 여지가 없었다. 또한 한국의 기독교가 성장제일주의에 매몰된 나머지 교인들에게 기복신앙만을 심어주었다. 이는 결국 교회이기주의와 교회성장제일주의를 만들어 냈다. 또 기독교의 지도자들이 역사의식에 대해서 무관심 했던 것은 물론, 서구교회가 이식시켜 놓은 교파주의에 매몰돼, 분열과 갈등에서 헤어나지를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한국의 기독교가 3.1운동에 대해서만큼은 높이 평가하고 있다. 그것은 한국교회가 내세울 만한 역사적인 사건들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교회는 성장제일주의에 치우친 나머지, 순교의 신앙에 대해서만큼은 배제되었다. 일본제국주의 아래서 많은 한국교회의 가난한 교인들이 순교를 당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들의 순교의 신앙과 정신은 실종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한마디로 한국교회의 강단에서 십자가의 정신이 기복신앙에 뭍혀지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선교 초기 ‘희망의 종교’로 돌아가라

한국기독교는 선교 초기, 교육과 의료, 계몽과 청년운동 등에 앞장섰다. 피압박민족과 가난한 민중, 그리고 나라를 빼앗기고 유리방황하던 한민족에게 위로와 희망을 되었다. 가난한 민중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주었고, 민족의식을 일깨웠다. 의료사업에 통해 병든 자들을 치유했다. 하나님나라에 대한 소망도 주었다. 한국기독교가 3.1운동을 주도할 수 있었던 것도, 교육사업을 통해 민족의 지도자를 길러냈기 때문에 가능했다.
1887년 아펜젤러에 의해 배재학당이 설립되고, 이화학당, 연희대학, 정신여학교, 평양의 숭실학교, 숭의여학교, 경신학교 등이 설립되었다. 이들 학교는 많은 민족주의자들을 길러냈다. 당시 한국사회와 교회에 필요한 지도자를 배출, 조직적인 독립운동을 벌일 수 있는 계기를 불러 일으켰다. 또한 기독교 선교의 기초가 되기도 했다. 이들이 일본 재국주의 아래서 교회와 무관하게 독립운동을 벌일 수 있었던 이유도, 기독교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민족주의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알렌 선교사는 1884년 갑신정변이 일어났을 때 민영익의 부상을 치료해 준 것을 계기로 조정의 신임을 얻어 최초의 서양식 병원인 광혜원을 설립했다. 알렌선교사는 신분을 가리지 않고 의술을 펼쳐, 한국기독교의 선교활동에 크게 공헌했다. YMCA와 YWCA는 젊은이들의 혈기를 기독교정신으로 승화시켜, 무지한 민중들의 계몽과 건전한 스포츠 활동 등을 선도했다. 이를 바탕으로 서구학문의 수용, 기독교 선교활동이 활발하게 이뤄졌다.

올해로 제94주년을 맞는 3.1운동의 중심에는 기독교가 있었고, 3.1운동은 비폭력 평화주의, 순교자적 신앙, 애국애족에 기반을 둔 기독교정신의 발현이었다. 물론 3.1운동에는 기독교 외에 천도교와 불교도 참가했고, 참여자 중에는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3.1운동의 준비와 전개에는 기독교정신이 크게 스며들어 있었던 것만은 사실이다. 또한 가난한 기독교인들이 중심에 서 있었다. 한국교회가 94년 동안 3.1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기념집회 및 예배를 드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국교회가 내세울 수 있는 민중운동, 민족운동, 독립운동으로 평가되고 있다.

순교의 정신을 살려야

하지만 이 운동의 주체였던 기독 여성들은 철저하게 소외되어 왔다. 당시 한국기독교 여성들은 3.1만세운동의 주체였다는 사실에 대해서만큼 재평가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센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기독여성들은 나라의 독립과 전도운동, 기도운동의 중심에 있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한 구국운동의 모체였다. 여성들이 한국교회사와 민족사에서 소외되고 있는 것은 당시 봉건적인 우리사회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사실 3.1만세운동의 영향을 받아 한 달 뒤 천안 병천 아우내 장터에서 일어난 만세운동 역시 여성인 유관순열사가 주도했다. 또한 일본제국주의 아래서 교회의 교인 대부분은 여성이었다. 그 여성들이 이름도, 빛도 없이 만세운동에 참여해 순교를 당했다. 하지만 가부장적인 한국교회와 우리사회는 이들에 대해서 그렇다 할 평가를 내놓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3.1만세운동 역시 사회적으로 소외된 기독여성들이 현장에 없었다면, 기독교가 중심이 된 운동으로 평가를 받지 못했을 것이다. 3.1만세운동 하면 제일 먼저 유관순열사를 생각하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최근 여성의 지위가 높아지고, 각종신학교에서 여성목회자들이 배출되고, 교회 내에서도 여성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이들을 중심으로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헌신한 기독여성들의 뿌리를 찾겠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한민국어머니기도회와 민족복음화 여성운동본부를 중심으로 기독여성사 편찬을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또한 3.1운동의 한모퉁이에는 먹고살기 위해 고향을 버리고 서울로 올라와 힘겹게 생활하던 민중들이 있었다. 이들과 여성들이 없었다면, 3.1만세운동은 역사적인 사건으로 기록되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 3.1만세 운동의 주최가 되었던 33인은 역사의 현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서울 태화관에서 독립선언문을 낭독하고, 경찰이 오기만을 기다리다가 연행됐다. 한마디로 3.1운동의 주체는 이들이 아니라, 가난한 백성과 소외된 거리의 유랑자였다.

이렇게 한국교회가 민족에게 희망을 주는 업적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학자들은 한국 초대교회 시절에도 반성할 점이 있다는 주장을 펴고 있는 것은, 한국기독교가 서구의 교파주의에 사로잡혀 경쟁적으로 교회성장에만 치중했기 때문이다. 또한 19세기 말부터 1910년까지 기독교를 받아들일 마음의 자세를 갖지 못한 것도 하나의 원인으로 꼽고 있다.

3.1운동의 주체는 민중이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양대인 자세이다. 당시 기독교는 정부도 함부로 할 수 없는 ‘힘의 종교’로 인식되었다. 일부 선교사의 최상의 경칭인 ‘양대인’의 세력을 빌어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외세 의존적 토착민들이 늘어났다. 이는 선교사와 교회를 배경 삼아 지역주민들에게 폐해를 끼치는 ‘교폐’ 사건으로 이어졌다. 양대인의 자세는 토착화된 교회를 만들어내지 못했으며, 한국 실정에 맞는 교회를 이루어내지 못했다. 즉 한국의 기독교 문화와 신학은 서구교회의 종속적이었으며, 선교사들은 제국주의적인 습성에서 벗어나지를 못했다. 이것은 한국교회가 세계선교에 참여하면서, 한국교회의 교파주의와 제국주의적 선교를 그대로 이식시키는 결과를 가져다가 주었다.

이러한 문제점들이 발견되면서, 한국기독교의 일각에서 역사를 바로 보는 눈을 가져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한국기독교회사 대부분의 선교사와 교회설립 등에 대해서 사실적인 것만을 기록하고 있다. 때문에 한국기독교의 역사를 분열사로 보는 것이다. 이제 시각을 바꾸어서 가난과 질병으로 인해 고난당하는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춰 활동했던 교회사를 새롭게 조명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또한 민족·민중사관에서 한국교회를 새롭게 평가하는 작업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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