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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는 고난당하는 자의 종교이다
기독교한국신문 | 승인 2015.07.21 13:57

한국교회는 1980년대 중반까지 가난하고, 소외되고, 고난당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선교를 사회적 환경변화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 펼쳐, 교회의 공공성과 사회성을 유지해 왔다. 이것은 나름대로 한국교회 성장의 전도자원이기도 했다.

그러나 전두환 정권과 노태우 정권, 그리고 김영삼 정권, 김대중 정권, 노무현 정권, 이명박 정권 등을 거치면서, 가난하고 소외되고 고난당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다. 이와 함께 이들과 함께 사회선교운동을 펼치던 교회의 지도급 인사들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졌다. 그러면서 이들을 위한 사회선교도 종교와 무관한 운동이 되어버렸다.

교회 역시 가난하고 소외되고 고난당하는 이웃을 멀리하기 시작했고, 산업선교는 종교와 무관한 세속운동으로 자리를 잡았다. 분명한 것은 유럽에서의 사회선교운동이 그랬듯이, 가난하고 소외되고 고난당하는 사람들을 위한 산업선교가 종교의 울타리에 벗어날 수밖에 없었다.

특히 환경의 변화와 함께 외국인노동자들이 국내로 몰려오면서, 일부 산업선교에 종사하던 지도자들은 외국인노동자들의 인권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많은 교회현장이 이들을 위한 공동체로 변화되었다. 반면 일부교회는 축복과 성장주위를 추구하는 교회로 탈바꿈 했다.

이렇게 가난하고 소외되고 고난당하는 사람들을 위한 교회들이 변화되기 시작한 가장 큰 원인은, 외적인 지원이 끊어졌기 때문이다. 사실 70-80년대 한국교회의 산업선교는 해외의 지원 의존했다. 그렇다고 교단이나, 교회의 지원을 받을 형편도 아니었다. 더욱이 한국교회가 산업선교를 한마디로 정치적인 단체로 매도해 왔던 상황에서, 기존의 교단과 기성교회로부터 지원을 받는다는 것은 그리 쉽지 않았다.

사실 영미정통주의 신학을 그대로 받아들인 보수적인 한국교회는 변화를 원치 않았다. 한국에 둥지를 튼 선교사들은 정통주의 보수신학을 그대로 가르쳤으며, ‘정교분리’를 내세워 교회의 사회참여에 대해 매도했다. 70-80년대 보수적인 한국교회가 민주화운동과 인권운동을 정치적인 활동으로 매도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면서 보수적인 한국교회의 지도급인사들은 독재정권을 위한 조찬기도회를 주도하는 잘못을 범했다. 그리고 이들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옷을 갈아입었으며, 독재자를 위한 기도회를 주도했다. 심지어 고 유모목사 등은 6.25 한국전쟁 당시 서울을 점령한 김일성을 위한 기도회를 주도하는 민족적 범죄를 서슴치 않았다.

이 뿐만 아니라 한국교회의 지도급 인사들은 일본제국주의 아래서 일본국가주의에 쉽게 굴복, ‘신사참배’에 적극 가담하는 등의 배교행위도 서슴치 않았다. 이와 같이 한국교회가 하나님과 민족 앞에서 죄인 아닌 죄인이 된 것은, 영미의 정통주의 신학과 보수적인 신앙을 선교사들이 그대로 이식시킨 결과가 빚어낸 것이라는데 이의가 없다.

한국의 정통과 문화를 존중하는 새로운 신학과 신앙을 한국교회에 이식시키기 위해 한국에 들어온 영국의 성공회 선교사들은, 정교분리와 보수적인 정통주의 신학과 신앙에 길들여진 한국기독교선교에서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장로교 300여교단이 보수적인 정통주의 신학과 신앙을 주창하며, 신학생을 양육하는 이유도, 바로 보수적인 정통주의를 주장하는 교단의 교회들이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교단에 속한 대부분의 교회들은 강단에서 천박한 성장과 축복을 외쳐, 성서에 빗나간 진리를 외치는 오류를 범했다. 그리고 맘몬이 지배하는 교회를 만들었다. 이것은 분명 한국교회의 왜곡된 축복 선언이었다. 한국교회의 면면을 살펴보면 축복과 말몬을 강조하며, 스스로 패밀리라고 주장했던 인사들이 범죄하는 모습만 보아도 그것은 극명하게 드러난다.

성서에 나타난 하나님은 분명, 가난하고 억압당하고 고통당하는 사람들의 하나님(출 3:7-8)이라고 했다. 이러한 전통은 예언자들에 의해서 전승되었다. 또한 구약성서의 전통은 예수에게서 그대로 계승되었다. 그렇다. 성서의 가르침대로 한국교회는 하나님나라 선교를 보다 효율적으로 감당하기 위해 맘몬과 바벨을 멀리하고, 왜곡된 교회성장론과 샤머니즘적인 축복론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 이것은 21세기 교회의 미래가 달려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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