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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운동의 정신 망각한 영성발표회데스크탑

오늘 한국교회 안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 중 하나가 ‘영성’, ‘성령’이다. 이 단어를 놓고, 보수, 진보적인 학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논쟁을 벌였다. 그것도 영국의 신학자 존 오웬의 ‘죄 죽이기’를 통해 한국교회가 변화되어야 한다는 논지이다. 성경의 거룩함을 상실한 한국교회가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외면하고, 부자들의 교회로 변질된 상황에서, 오웬의 ‘죄 죽이기’를 통한 영성회복의 중요성을 제기한 것은 당연하다.

탈 신학화되고 있는 상황과 거룩함을 상실한 한국교회가, 이를 극복하고 극약처방으로 오웬의 ‘죄 죽이기’를 들고 나왔다는데 문제가 있다. 여기에다 청교도의 정신을 극찬하고 나왔다. 그렇다고 청교도 신앙을 비하하는 것은 아니다.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오웬이 등장한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고려해 볼 때 ‘죄 죽이기’는 당연한 것이었다. 이를 극복하지 않고서는 욕정과 탐욕에 불타고, 제국의 힘을 빌어 이웃나라를 식민지 시키는 상황에서, 자신의 마음에 내제된 ‘죄를 죽여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당시 영국은 이웃나라를 침략해 가난한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으며 식민지화하고, 이웃나라의 가난한사람들을 수탈하고, 착취하면서 부자가 됐다. 영국 국민들 역시 부자가 되면서, 마음은 강팍해 졌고, 욕정과 탐욕은 불타올랐다. 여기에다 영국국민들의 영성은 땅에 떨어졌다. 성서를 자신의 주관대로 해석하며, 기독교를 문화로 만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오웬은 영국 국민들을 향해 ‘자신의 마음속에 지닌 죄를 죽여야 한다’고 설교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웬 역시 성령의 역사가 가난하고, 소외되고, 고난을 당하는 사람들 속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몰각했다. 그것은 오웬도 성서를 제국주의자들의 입장에서, 아니 가진 자의 입장에서 해석하고, 성서가 담고 있는 하나님나라운동의 중심사상을 몰각했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지금까지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귀가 따갑도록 들은 말이 바로 예수님의 모습을 닮아야 한다고 들었다. 바로 그리스도인들이 예수운동, 아니 하나님나라운동에 참여할 때 사회가 변혁되고, 그리스도인들이 변화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날 발제자로 나선 학자들은 오웬의 영성을 둘러싸고 소모적인 논쟁을 벌이며, 오웬의 화려한 이력을 나열하며 마치 한국교회와 사회에 전혀 맞지 않은 ‘죄 죽이기’가 한국교회를 살리는 운동인양 말장난을 벌였다. 한마디로 예수운동을 통한 변화와 개혁에 대한 것보다, 제1세계 영성신학자의 단어를 그대로 한국교회에 옮겨, 이것이 최고인 것처럼 포장하는데 급급했다는 것이다.

모학술원이 주관한 영성발표회는 예수님의 영성, 예수운동이 닮고 있는 ‘성령의 역사’를 몰각하고, 부자교회가 된 한국교회가 취해야 할 영성이 바로 제1세계 신학자들이 주장한 ‘죄 죽이기’를 그대로 한국교회에 옮겨 놓으려는 의도가 아니었으면, 한국교회의 상황에서 예수님의 영성을 분명하게 말해야 한다.     

예수님의 영성은 성서에 기록된 대로 △가난하고 고난당하는 사람들과 하나가 되어 하나님나라 운동을 펼쳤다 △예수님의 삶 전체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과 나누었다(마가복음 2장11절, 3장 31-35절) △예수님의 삶은 섬기는 삶이었다(마가복음 10장 41절, 마태복음 18장 1-5절) △예수님의 삶은 하나님나라로 향해 있었다(누가복음 17장 21절) △예수님의 삶은 가난한 사람의 갈망에 대한 구체적 응답이었다.

한국교회가 예수님께서 선포한 성서의 말씀을 몰각한 채 부자가 된 한국교회, 유럽으로 건너가 문화가 된 기독교의 영성을 그대로 전달하는 저급한 학문을 둘러싼 논쟁은 여기에서 끝나야 한다. 이것은 종교적, 사회적, 정치적 벽을 뛰어 넘어 혁명을 일으킨 예수님의 뜻과 거리가 먼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이들은 영미신학자들의 학문을 그대로 전달하는 저급한 학자들로 영성운동, 예수운동, 하나님나라운동을 한국적 상황에서 재해석하지를 못한 채, 천박한 말장난으로 예수님의 마음을 곡해하고 있다.

이러한 제1세계의 제국주의 신학과 식민지신학, 그리고 지배자의 신학을 그대로 받아들인 한국의 신학자들은 우리의 문화와 역사, 그리고 성서에 담겨져 있는 하나님나라운동과 예수운동의 중요성을 몰각, 우리의 강단을 천박하고, 쓰레기 같은 말들로 넘쳐나도록 하는데 그 중심에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유달상 기자  yds127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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