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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한동대 교목 김대옥 목사의 신학적 오류이런 모든 것이 다 성경을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는 자유주의 신학에서 비롯된 것이다.
김성한 | 승인 2019.10.21 13:06

*전 한동대학교 교목 김대옥 목사에 대하여 지난 104회 총회에서
예장 백석은 "이단"결의
예장 합신은 "반성경적 사상"으로 참여금지를 결정했다.

 

김대옥 목사,
"예수님의 성령 잉태 부정!"
"예수님의 육체적 부활 부정!"
명백한 이단
!!!

기독교 신앙은 우리의 신앙에서 부딪히는 문제들에 대하여 오직 성경에 근거하여서만 답을 할 수 있다고 여긴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의 가르침과 성경을 중심으로 하는 신학을 중요시 한다.

김대옥 목사가 계속 이단설을 주장하게 되는 것은,
신앙과 신학의 시작인 성경에 대한 개념부터가 잘못되어 있기 때문이다.

김대옥 목사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역사 지리 그런 과학적인 다양한 지식들이 아직 미발달 되었을 때, 즉 과학 이전 시대에 당연히 고대인들은 세상의 현상들을 그렇게 바라보고 그렇게 해석하고 이해했구나 라고 볼 수 있는 자연적 문자주의 현상들이 성서에 많이 내재해 있다고 보는 거예요 <김대옥 설교 2017년10월 23일 >

이처럼 김대옥 목사는 성경의 절대적 권위를 인정하지 않으며,
성경에 나오는 기적을 미개한 시대의 신화 정도로 여기며,
성경의 표적과 기사를 사실로 인정하지 않고
정통신학의 “성경은 정확 무오한 영감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고백을
‘문자주의’라고 폄하한다.

 

김대옥 목사는 기독교의 신앙의 핵심적인 내용들을 문자주의라며 부인한다.

성령의 잉태라고 하든지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 만에 육체적으로 부활했다 라든지 육체적으로 승천하셨고 심지어 육체적으로 재림해 오실 것이다 라든지, 이와 같은 성경에 나와 있는 그런 소위 과학주의적 사고 방식이 손쉽게 극복할 수 없는 모든 진술들을 모두 문자적으로 사실이다 라고 하는 그런 주장들이 바로 흔히 우리가 문자주의 라고 얘기를 하겠습니다.
<김대옥 설교, 2017. 9. 17.>

이 설교 내용에서 보듯이 김대옥 목사는 사도신경의 내용도 인정하지 않는다.
예수님의 성령 잉태도 부정하고,
예수님의 육체적 부활도 부정하고,
재림도 부정한다.
이것만으로도 김대옥 목사는 충분히 이단 아닌가?

 

 

이슬람에 대한 목사의 주장,
"성경과 꾸란은 같은 권위의 경전!"
"알라와 하나님은 같은 신!",
이것은 정통 교리에서 완전히 벗어난 이단설이다!!!

이슬람의 알라는 성경의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은
정통 기독교의 일치된 결론이다.
꾸란과 성경을 찬찬히 대조하며 읽어보면,
알라는 성경의 하나님과 너무나 다르다는 사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알라와 여호와 하나님이 같은 하나님이라는 김대옥 목사의 주장은
이슬람의 알라에 대하여 무지하거나
우리가 믿는 삼위일체 여호와 하나님에 대하여 무지하기 때문일 것이다.
김대옥 목사가 이러한 주장을 하게 되는 것도 역시
성경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김대옥 목사는 다음과 같이 꾸란과 성경을 동등한 위치에 놓는다

구약성서든 꾸란이든 인류의 역사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과 그 백성들 사이에서 형성되어 온 거룩한 문서들이다. 물론 그것이 ‘천상에 선재’한다는 선언은 신앙전통 내부의 경건한 신앙고백이다. 하지만 그 선언을 문자적으로 적용하려 한다면 오히려 문제를 야기하게 된다.
<김대옥, “구약성서와 꾸란의 대화” 205쪽>

 김대옥 목사의 주장은 구약의 이스라엘과 이슬람 신자가 동등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이며, 꾸란과 구약성경이 같은 권위의 경전이라는 것이다.
이 주장만으로도 김대옥 목사는 충분히 이단이다.

이러한 김대옥 목사의 주장은
영감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권위를 부정하고
“성경은 변형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김대옥 목사는 성경과 꾸란이 모두 어차피 전승 과정에서 변형되고 수정된 결과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김대옥 목사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전승은 구전과정에서 변화를 겪게 마련이며, 따라서 계통상 크고 작은 차이를 보이게 마련이다. 나아가 전승은 특정 공동체의 특성에 따라 의도적으로 변형되고 수정되는 것이 당연하다. 또한 이야기는 전달자와 청중에 따라 조금씩 상이하게 전달되기 마련이다. 그것이 바로 동알한 예수 사건을 두고도 복음서 네 권이 각각 서로 다른 표현들로 소개하는 이유이다. 앞 세대는 공동체 내부에 전승되는 이야기들을 후세대에 전달했는데, 특히 그 안에 담긴 하나님의 의도와 신적 행동들이 후대를 교훈하기 위한 목적으로 전달되었다. 그것은 곧 신앙공동체의 공동고백이 되어왔고, 공동체의 특징을 형성해 왔다. 그것이 완성된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 오늘날 구약성서와 꾸란이다.
<김대옥, “구약성서와 꾸란의 대화” 211쪽>

즉, 김대옥 목사의 주장은, 어차피 성경이나 꾸란이나 전승과정에서 변형되고 수정된 것인데, 굳이 차이점을 따져서 어느 것이 진리인지 가릴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며,
성경이나 꾸란이나 그냥 도덕적 교훈만 얻으면 되는 책이라는 주장이다.
결국 김대옥 목사의 결론은 성경과 꾸란 모두 진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김대옥 목사는 다음과 같이 성경의 절대적 진리성을 부정한다.

기독교와 이슬람은 양 경전이 의도하는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그것을 이행하기 위한 노력에 함께 경주해야 한다. 그러하기 위해서는 경전 간 불일치에 대해 성서는 진리이며 꾸란은 비진리이다라거나 꾸란은 오류가 없으며, 따라서 성서가 변질되었다라는 상호 배타적 주장들을 철회해야 한다. 이미 양 경전이 각 종교의 권위적 규범서로 각기 존재하는 한, 그리고 그것이 완전히 ‘동일’하지 않은 ‘다른’ 경전인 한, 그 차이를 가지고 갈등의 통로로 사용할 일이 아니다. 오히려 그 차이는 각 경전의 고유한 특징임을 상호 인정하는 수용적 노력이 필요하다. 오히려 양자가 갖는 그 동일 주제와 본래 기록 목적을 가지고 공동의 진리를 추구하는 적용 노력을 함께 기울여 가야 할 것이다.
<김대옥, “구약성서와 꾸란의 대화” 236쪽>

김대옥 목사의 주장은 어차피 성경이나 꾸란이나 진리가 아니니
굳이 그 차이점을 가지고 왈가왈부 따지지 말자는 것이다.
김대옥 목사처럼 성경을 읽으면 기독교의 핵심 진리를 놓칠 수밖에 없다. 

 

아브라함이 번제로 바치려던 아들이 이삭인가 이스마엘인가?
    꾸란은 이스마엘이라 하고,
    성경은 이삭이라고 말씀하신다.
어느 것이 맞는가?
김대옥 목사는 뭐가 되든 상관 없다고 주장한다.

 

다음은 모리아 산 사건에 대한 김대옥 목사의 주장이다.

노아 내러티브의 비교를 통해 살펴본 바도 있지만, 가령 아브라함 내러티브의 경우를 보자. 양 경전이 차이를 보이고 있는 부분, 예컨대 그가 번제하려던 아들이 이삭인지 이스마엘인지의 여부나 이스마엘을 데리고 아라비아에 갔는지의 여부와 같은 차이는 양자 간의 대화를 위한 논의에서 부차적 사안이 되어야 한다(또는 배제되어야 한다). 공통점을 추구하는 경전읽기에서 중요한 점은 그 내러티브가 공통적으로 갖추고 있는 진술 및 기록 목적이다. 즉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내러티브를 통해 신자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중심인 것이다. 하나님은 은혜로 그를 택하셨고, 그의 믿음을 귀히 보시고, 복주시고, 믿음의 조상으로 삼고, 그의 후손들을 번성케 하셨다는 사실이다.
<김대옥, “구약성서와 꾸란의 대화” 229쪽>

김대옥 목사의 주장은,
아브라함이 아들을 바치려고 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지,
그 아들이 이삭이든 이스마엘이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김대옥 목사는 큰 착각을 하고 있다.
이것은 메시야와 관련된 엄청나게 중요한 사건이다.

 (창 22:18)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아브라함이 모리아 산에서 바친 아들이 누구인지가 왜 중요하냐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의 계승자가 누구인지와 연관되며
메시야의 계보와 연관되기 때문이다.

만약에 그 아들이
이스마엘이라면 구원자가 이스마엘의 후손에서 나올 것이며.
그 아들이 이삭이라면 구원자는 이삭의 후손에서 나올 것이다.

김대옥 목사가 모리아 산에서 바쳐진 아들이 이삭이든 이스마엘이든 상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구원자가 예수이든 무함마드이든 상관 없다는 뜻이 되며
이것은 김대옥 목사가 예수와 무함마드를 동등한 권위로 여기고 있다는 뜻인데,
놀랍게도 김대옥 목사는 실제로 예수와 무함마드를 동등하게 여기는 주장을 한다.

김대옥 목사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역사적 예수와 무함마드는 모두 당대 현실 사회의 근본적 세계관을 혁파했던 개혁자들이었다. 대중을 우민화하고 교조적 율법으로 민초들을 억압하던 기득권 세력에 박해를 받으면서도 하나님의 듯을 선포하던 이들이었다.
<김대옥, “구약성서와 꾸란의 대화” 270쪽>

  

결국 김대옥 목사는 성경의 중요한 모든 진리를 다 놓치고
예수님이 한낱 사회의 불의에 저항했던 개혁자 정도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성경의 모든 중요한 진리를 다 놓친 결과는
정작 진리를 위한 싸움은 포기하게 만들고
진리가 아닌 것을 위해서 투쟁하게 만든다.

김대옥 목사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오늘날 최근에 기독교 내부에서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는 동성애 또는 뭐 여성혐오 또는 성차별 그 다음에 뭐 이슬람 혐오 등등의 그런 이슈들 속에서 약자들에 대한 그런 차별 혐오 배제와 같은 것들이 오히려 성경적이다 라고 주장하는 그런 경향들이 바로 문자주의에서 나오는 그런 이해라 하겠습니다.
<김대옥 설교, 2017. 9. 17.>

이 설교에서 나타난 것처럼,
김대옥 목사는 성경이 죄라고 말하는 것과 싸우는 것을 잘못된 것으로 여기고
성경이 죄라고 말하는 것을 옹호하기 위하여 투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모든 것이 다 성경을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는 자유주의 신학에서 비롯된 것이다.

 

김대옥 목사는 종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린다.

종교는 궁극적으로 문명 통합의 기초가 되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종교적 아이디어들은 서로 배우고 서로 빌려야 하며, 서로 이해하고 서로 사랑해야 한다. 종교는 증오로 남아서는 안된다.”
<김대옥, “구약성서와 꾸란의 대화” 281>

 김대옥 목사의 주장처럼 모든 종교의 목표를 문명 통합에 두고
상호 인정을 추구한다면, 불경도 성경과 같은 책이 되고,
신천지도 기독교의 형제로서 서로 이해하고 사랑해야 할 대상이 된다.
그래서 김대옥 목사는 이단이다.

 

 

"김성한 목사, 합신 이단사이비대책위원장"

 

 

 

 

 

김성한  kimmox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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