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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는 타락기에도 희망의 줄을 놓지 않는다!한국성경신학회, 아모스서 논문 발표
종교와 진리 | 승인 2018.08.20 21:33

 

교회, 내공에 자정능력 충분한가?

우선 최근 일련의 사태들을 통해, 교회의 자정능력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소속 교단 헌법까지 고쳐가며 양심, 여론 무시하고 진행된 대형교회의 세습문제, 충분히 대처하지 못하고 있는 이단․사이비종교 문제, 개교회주의, 동성애 관련 사태,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의 병역 거부 문제, 각종 이단 집단들의 종말 강조로 인한 국제적 망신 뿐만 아니라, 교단 및 연합기관들이 공동으로 대처해야 할 이단집단으로 인한 심각한 피해의 문제는 피해자들 스스로 떠안고 직접 아스팔트 선교사로 뛰쳐나와 피켓 들고 매일같이 외치고 있는 상황... 산적해 있는 이러한 난제들은, 일반 언론을 통해 정통 기독교의 위신까지 추락시키고 있음에도, 벙어리 냉가슴 앓 듯만 하고 있다.

이러한 때에, 한국성경신학회에서 제42회 정기논문 발표회를 “아모스서 주해와 설교”로 하여 8월 20일, 신반포중앙교회당에서 진행되었다. 논문 발표자는 최순진 박사(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학교 구약신학), 박덕준 박사(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구약신학), 장세훈 박사(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구약신학)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암 5:24) - 이처럼, 현 한국교회에, 그리고 이 시대에 공의와 정의가 물같이, 하수같이 흐르고 있는가?

이에 대하여 어떠한 시각을 가지고 있을까를 궁금해 하며, 참석하였다.

‘벧엘?’ 그렇지, ‘벧엘!’

첫 번째 발제자로 나선 최순진 박사의 아모스서 해석은 참신하고 산뜻했다. 문제의 본질을 한 마디로 축약해 ‘벧엘?’ 그렇지, ‘벧엘!’로 보았다.

이스라엘이 죄로 인한 심판의 불가피, 그리고 그 심판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현 상황, 그러나 심판 이후에는 이스라엘에 일말의 희망이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모스 당시 시기, 상황을 하나님께로 받은 선지자의 외침은 바로 우상숭배에 대한 문제의 직시였다. 그것이 곧 ‘벧엘’의 문제였다. 때문에 선지자는 근본적으로 하나님과의 언약관계가 다시금 회복되기 위해서는 그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벧엘!’

암 3:14에서, 왜 심판이 사마리아에 임하게 되었는가? 심판의 주된 원인은 벧엘의 제단에서 행해진 우상숭배가 죄악이며, 이것이 사회 정의의 문제보다 더욱 강조되는 부분이다. 바로 신앙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종교적인 타락을 지적한 것이다. 벧엘의 제단에서 행해진 죄악에 대한 단호한 심판!

구약성경에서 벧엘은 어두운 역사를 지닌 곳이다. 벧엘은 유다와 이스라엘의 경계지역에 근접해 있는 북왕국 이스라엘의 영토이다. 여로보암은 예루살렘에 대항해서 벧엘에 2개의 황금 송아지 상 중의 하나를 세웠다. 그는 벧엘에 산당을 짓고 산당의 제사장을 그곳에 세워, 이스라엘로 하여금 범죄케 하였다. 선지서에서 종종 언급될 때, 벧엘은 종교적인 타락의 상징성을 갖고 있는 곳이다.

종교적인 우상숭배의 행위로 인해서 초래된 심판으로, 축복으로 주어진 부(富)가 모두 빼앗긴 것이다.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그래서 5:4~17은,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악이 아니라 선을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등으로 시작한다. 희망을 선언한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를 거부한다.

3~7장까지에서 아모스는 여호와께서 어떻게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의 필요성을 제기했고, 8장은 심판이 이미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심판 때의 이스라엘의 비참함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이 시점에서 아모스는 더 이상 이스라엘을 파멸할 필요가 없다. 죽은 시체를 발로 차서 더 이상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은 죽은 거나 다름 없다. 이스라엘은 파산된 법인체나 다름 없는 상태인데, 이를 소송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9:1~4의 심판의 메시지는 이스라엘의 대상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치리하는데, 사용된 이스라엘의 적들에 대한 여호와의 파멸의 약속이다.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에 등장하는 열방에 대한 신탁의 전형적인 구조이다. 이제 이스라엘의 가해자들이 파멸의 순간을 맞이할 때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적들의 파멸에 대한 여호와 약속은 이스라엘의 회복의 시작이다.

이 회복 절차는 하나님의 주권적 시도로 시작된다. 여호와가 운전석에 앉아 있고, 이스라엘은 조수석에 앉아 있다.

이스라엘은 강대국에 져서 포로가 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유일신 사상에 어긋나게 우상을 숭배함으로써 언약을 파괴한 대가로 포로생활이라는 심판이 임했고, 이것은 공의의 하나님의 뜻이다.

이러다가 9:7~8은 이스라엘과 하나님과의 언약관계를 다시 천명한다. 여호와는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하신 구원자이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백성이다. 그러나 이스라엘도 심판을 회피할 수는 없다. 아모스가 3~8장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의 불가피성을 주장했으나, 벧엘, 길갈, 사마리아에서의 우상숭배 행위로 이스라엘이 아무리 지구 표면에서 없어져야 할 사악한 죄를 지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언약적인 신실하심으로 이스라엘에게 남은 자를 남겨둘 것이다.

그래서, 9:11~12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밝힌다. 하나님의 미래에 대한 계획인 9:11~15는 두 개의 신탁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날에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천막을 일으킬 것이다. 이스라엘의 적 에돔으로 상징되는 이스라엘의 모든 적들을 포함하여, 여호와에 의해 이름이 불려진 모든 국가들이 재건된 이스라엘에 포함될 것이다. 이후 미래의 축복을 예언한다. 이스라엘을 포로로부터 귀환하게 하여 이스라엘을 회복시킬 것이라는 것이다.

우리 교회의 근본적인 문제는 성경 무지의 현상이 교회의 적이며, 개혁의 첫 대상이다.

이러면서 최순진 박사는,

“물질주의가 우리 신앙의 적인가? 성 윤리의 타락이 제1 문제인가? 우리가 알다시피 사기꾼 공화국의 시민권이 우리의 적인가? 신천지가 교회의 적인가? 이슬람이 우리의 적인가? 동성애가 우리의 적인가? 교회 세습이 우리의 적인가? 우리 교회의 근본적인 문제는 성경 무지의 현상이 교회의 적이며, 개혁의 첫 대상이다.”라고 주장하였다.

우리 교회 스스로 자성하고, 자정 능력을 회복하여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하나님 나라의 공의와 정의가 교회에서부터 굳건히 세워져, 세상을 향한 외침에 거리낌이 없는 교회가 되도록!

그리고 그것이 메시야를 통해 회복할 것이라고 확신하며 일어서서 나아갈 때, 교회에 희망이 있지 않겠는가!

타락 시대에도 희망의 줄을 놓지 않고!

그것은 장세훈 박사가 주장하듯, 암 9:11에 나오는 다윗의 장막을 통해 일깨워준다. 장차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이가 분열된 다윗의 왕조를 회복하고, 하나님 나라의 통치와 영광을 재현할 것이다. 그래서 장막은 분명 새 성전이신, 부활이신,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이다. 궁극적 성취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후 민족 이스라엘의 회복을 통해 이루어질 것이다.

이 시대는 이미 시작되었을 뿐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다. 그러므로 신약의 교회는 아모스가 고대했듯이 무너진 다윗의 장막이 완전히 세워질 그 날을 고대하며 믿음으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타락 시대에도 희망의 줄을 놓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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