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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 정당화하는 퀴어신학은 이단 사상이다.오늘날 동성애를 수용하느냐 않느냐는 단지 한 교인의 개인 윤리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라 이를 수용하는 교회와 신학교의 영적 정체성이 결정되는 시금석이 된다는 것을 천명하고자 한다.
종교와 진리 | 승인 2018.08.10 16:15

머리말

필자도 처음에는 ‘동성애 이슈는 단지 윤리적 이슈지 교리적 문제가 아니다’라고 생각했다. 필자도 그렇게 생각하고 동성애가 교회에까지 들어오고 있구나 정도로 생각하고 기독교 윤리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면서 교회와 교인들에게는 덕스럽지 못하니 막아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필자가 이 이슈를 보다 신앙 교리적으로 접근하게 되면서 사상사적으로 마르크시트적 인류 문화적 성 혁명과 연결되는 것으로 보면서 동성애 문제는 단지 윤리적 이슈를 넘어서서 교회가 서고 넘어지는가 하는 교리적 문제에 해당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는 초대교회에서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에서 가만히 일어나 믿음에다 율법 행위를 부가하려는 기독교 유대주의자들에 대하여 “아나테마”(Anathema)를 선고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리고 종교개혁자 루터가 초대교회의 은혜교리에 공로교리를 첨가하여 기독교를 변질시킨 로마 천주교에 대하여 이신칭의라는 교리가 “교회가 서고 넘어지는 대들보 교리”라고 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오늘날 동성애를 수용하느냐 않느냐는 단지 한 교인의 개인 윤리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라 이를 수용하는 교회와 신학교의 영적 정체성이 결정되는 시금석이 된다는 것을 천명하고자 한다. 이 분야에서 총신대 신대원 기독교 윤리학 교수 이상원이 퀴어신학의 괴기한 교리에 대하여 원전 『퀴어신학』(Queer Theology에 근거하여 종교개혁적 개혁정통신학 관점에서 기본적인 비판을 선구적으로 탁월하게 수행하고 있다. 그리고 합신대 조직신학 교수 이승구가 제15회 샬롬나비학술대회에서 발표한 논문도 정통개혁신학에 입각한 예리한 비판적 통찰과 아울러 이에 대한 풍부한 학술적 자료를 비판적 연구를 위하여 제공하고 있다. 구약신학에서는 장신대 교수 배정훈이 “구약성경에 나타난 동성애”라는 논문에서 탁월한 비판적 분석을 보여주고 있다.

I. 동성애 이슈는 단지 윤리적 문제를 너머선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증한 악”이다.

신구약 성경은 여러 곳에서 확실히 동성애를 가증한 악(detestable)이라고 정죄하고 있다.

1. 구약(창세기, 레위기, 에스겔)의 경고

“롯을 부르고 그에게 이르되 오늘 밤에 네게 온 사람들이 어디 있느냐 이끌어 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5절) 롯이 문 밖의 무리에게로 나가서 뒤로 문을 닫고(6절) 이르되 청하노니 내 형제들아 이런 악을 행하지 말라“(창 19:5-7)

“너는 여자와 동침함 같이 남자와 동침하지 말라 이는 가증한 일이니라”(레 18:22)

“누구든지 여인과 동침하듯 남자와 동침하면 둘 다 가증한 일(detestable을 행함인 즉 반드시 죽일지니 자기의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레 20:13)

“네 아우 소돔의 죄악은 이러하니 그와 그의 딸들에게 교만함과 음식물의 풍족함과 태평함이 있음이며 또 그가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도와주지 아니하며(49절), 거만하여 가증한 일을 내 앞에서 행하였음이라 그러므로 내가 보고 곧 그들을 없이 하였느니라”(겔 16:49-50)

“내가 예루살렘 선지자들 가운데도 가증한 일을 보았나니 그들은 간음을 행하며 거짓을 말하며 악을 행하는 자의 손을 강하게 하여 사람으로 그 악에서 돌이킴이 없게 하였은즉 그들은 다 내 앞에서 소돔과 다름이 없고 그 주민은 고모라와 다름이 없느니라”(렘 23: 14).

2. 신약의 경고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26절),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롬 1:26-27)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9절)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고전 6:9-10)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그들과 같은 행동으로 음란하며 다른 육체를 따라 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유 1:7).

II. 퀴어신학의 신론, 기독론,

I. 신론, 삼위일체론

1. 하나님에 대한 불가지론, 남신 그리고 범재신론

퀴어 신학자들은, 오랜 신비주의 전통을 언급하면서, 불가지론을 말한다: “인간이 사용하는 은유(metaphor)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정확히 표현하기에 적절하지 않으므로 그 누구도 하나님에 대해서 최종적인 말을 할 수 없다” ‘퀴어 신학자들’(Swicegood, Althaus-Reid, Johnson, Cornwall 등)은 결국 ‘퀴어 하나님’(queer God)을 요구한다. 여성 퀴어신학자 콘웰은 피력한다: “알타우스-레이드저작은 퀴어 이론과 후기 식민지 이론을 정치학과 경제학과 함께 엮는다. 그리고 하나님은 역시 퀴어(God is also queer)라고 선언한다. 그녀는 주장한다. 사실 하나님은 교회에서 추방당해서, 변두리 사람들, 특히 정치적 성적 그리고 젠더 소외자들(political, sexual and gender dissidents)과 함께 계신다.”

퀴어신학은 하나님을 남근을 지닌 남신으로 해석하고 있으며,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표명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어떤 퀴어 신학자는 삼위일체는 “세 사람이 동성애적 관계를 하는 것”(gay, sexual threesome)을 표현한다고까지 주장한다.

미국 드류대 여성 퀴어신학자인 캐슬린 켈러는 하나님을 모든 존재, 세상과 만물의 역동성을 가능케 하는 힘이요, 테흠, 혼돈, 깊음이라고 상징했다.

2. 신자와 성애를 나누는 남신: 하나님에 대한 외설적 해석

퀴어신학자들은 하나님을 신자들과 성애를 나누는 분으로 묘사한다. 영국 더험(Durham)대의 게이(gay) 로마 천주교 퀴어신학자 제라드 로흘린(Gerard Laughlin)은 에스겔 1:27에 있는 “그 허리 아래의 모양도 불 같아서 사방으로 광채가 나며”라는 표현을 하나님의 성기(남근)를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본다. 로흘린은 에스겔16:8 “내 옷으로 너를 덮어 벌거벗은 것을 가리고”를 성관계 갖기 위해 자리에 누운 것으로 해석했는데 이 장면은 특히 합법적인 아내와 잠자리를 같이 하는 것이 아니라 처녀를 강간하는 장면으로 해석한다.

 

<반론>

1) 하나님을 남신으로 해석:

몸을 지니시지 않은 영적 존재인 성경의 하나님 모독로흘린이 에스겔 1장 27절의 “그 허리 아래의 모양도 불 같아서 사방으로 광채가 나며”을 “하나님의 성기”를 우회적으로 표현한다고 해석하는 것은 하나님을 남신으로 보고 성기를 지닌 분으로 본다. 이는 외설적(猥褻的) 해석으로 전혀 비성경적 해석이다. 하나님은 영이시다. 그는 몸을 지닌 분이 아니시다. 그분은 남신도 여신도 아닌 하나님이시다. 이러한 하나님에 대하여 남근을 지닌 분으로 해석하는 것은 젠더주의적 해석이다.

2) 그의 패역한 백성에 언약을 회복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모독

에스겔 16장 8절 “내 옷으로 너를 덮어 벌거벗은 것을 가리고”은 처녀를 강간하는 장면이 아니라 하나님을 배신한 이스라엘에게 하나님 백성의 언약을 주신 것을 옛 중동 지역의 결혼 예식으로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옛 중동에서는 남자가 . 겉옷을 가지고서 여자를 덮음으로써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이는 상징적인 몸짓을 하였다.

II. 기독론은 외설적 기독론

1. 역사적 예수를 동성애자 내지 여성적 요소를 지닌 남성으로 간주

1) 역사적 예수는 동성애자

퀴어신학자들(Montefiore, Jennings 등)은 예수가 동성애적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고 본다.

여성 퀴어신학자 (Isherwood)는 “퀴어링 그리스도”(Queering Christ)라고 말하기도 한다.

패트릭 쳉도 퀴어 성해방 승리의 상징인 “퀴어 그리스도”(Queer Christ)를 선언한다.

이들은 요한복음의 다음 구절에 근거하여 예수가 제자 요한과 동성애 관계에 있었다고 주장한다: “예수의 제자 중 하나 곧 그가 사랑하시는 자가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웠는지라”(요13:23). 이러한 해석은 전혀 본문의 맥락에 맞지 않은 젠더주의적 왜곡이다.

<반론> 제자를 사랑하는 예수와 신실한 제자인 사제 관계를 왜곡하는 외설적 해석.

공관복음과는 달리 요한복음에 연속적으로 나타나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요 13:23; 19;26; 20:2; 21:7, 20)는 저자 자신인 사도 요한이며, 자신이 예수의 총애를 받는 신실한 제자로서 예수에 대한 자신의 기록이 참되다는 것을 증언하고 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 20:31).

2) 성육신한 예수의 몸을 생물학적으로 자웅동체적 존재로 해석

여성 퀴어신학자 엘리자베스 스튜어트(Elizabeth Stuart)는 성육신하신 아기 예수의 몸은 남성성과 여성성을 한 몸에 지닌 몸이었다고 해석한다. 스튜어트는 그 근거로서 예수님은 “남성으로 탄생하셨으나 순전히 여성의 몸의 요소들로만 구성되었음”을 지적한다. “아기 예수는 생물학적으로 남성과 여성으로 구분되는 기존의 인간존재방식과는 다른 새로운 피조물”이다.

<반론> 예수의 몸을 자웅동체로 보는 것은 젠더주의적 해석이다.

퀴어신학이 예수의 몸이 기존 인간 존재방식과는 다른 새로운 피조물, 즉 남성과 여성을 모두를 한 몸에 지닌 자웅동체로 보는 것은 이단적 관점이다. 초대교회 영지주의자들은 예수가 몸으로 오신 것을 부인했다. 예수는 육체를 지니지 않고 가상적 몸을 입고 영적으로 오셨다고 주장하였다.

3) 정통개혁신학: 예수의 몸은 우리와 동일한 몸이다.

바울은 그리스도 찬가를 인용하면서 예수가 우리와 같은 몸으로 인간이 되셨다고 증언한다: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빌 2:7). 예수의 몸은 특별한 몸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연약한 몸이었다.

2. 십자가에 죽으실 때 ‘예수의 옆구리에서 나온 피와 물은 여성의 성기에서 나온 액체요 젖’이라는 외설적 해석

1) 예수의 옆구리 상처는 자궁이라는 해석은 외설이다.

여성 퀴어신학자 엘리자베스 스튜어드는 다음같이 젠더주의적으로 해석한다: 예수님의 옆구리가 창에 찔려서 상처가 나고 피와 물이 나왔는데(요19:34), 이 상처는 곧 여성의 자궁이고 이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액체는 곧 여성의 성기에서 흘러나오는 액체이며 또한 젖이다. 이처럼 남성성과 여성성을 자웅동체로 지니고 계신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에서는 여성으로 전환되신다.

<반론> 예수의 옆구리를 자궁으로 보는 것은 예수의 몸을 여성화시키는 것이다.

예수의 피를 여성이 생리적으로 흘리는 피로 간주하는 것은 외설적이다. 예수의 옆구리 피는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흘리는 하나님 아들의 거룩한 피다.

2) 창에 찔린 상처에 입을 맞추는 행위를 구강 섹스로 신성 모독 해석.

여성 퀴어신학자 에미 홀리우드는 다음 같이 젠더주의적으로 해석한다: 창에 찔린 상처에 입을 맞추는 행위는 여성의 성기의 외음부에 입을 맞추는 구강섹스(oral sex)이며, 상처에서 나오는 피를 핥는 것은 구강섹스에서 여성의 성기에서 나오는 액체를 받아 마시는 행위다. 따라서 수녀들이 그리스도 상의 옆구리에 난 상처에 입을 맞추는 것은 여성 동성애(lesbianism) 행위다.

<반론> 예수의 상처에 입맞춤을 구강 섹스로 해석하는 것은 외설의 극치다.

예수의 피흘리시는 상처에 입맞춤은 성찬식 때 떡과 포도주로 마시면서 행하는 상징적 행위이다. 이러한 상징적 행위 속에서 예수는 영적으로 임재한다. 영적 임재의 사건을 젠더주의적으로 왜곡하는 것은 신성모독이다.

3. 부활한 예수의 몸은 다젠더적(多性的)이라는 해석도 젠더주의적 왜곡.

1) 부활한 예수의 몸을 남성성과 여성성의 자리바꿈이 가능한 몸으로 왜곡

스튜어트에 따르면 예수의 몸은 부활을 통하여 “다젠더적인 몸”(multi-gendered body)이 된다. 그리스도의 다젠더적(多性的)인 몸 안에 있는 성도들도 “투과적이고, 범신체적이고, 자리바꿈이 가능한(permeable, transcorporeal, and transpositional)”몸이 된다.

<반론> 부활한 예수의 몸은 남성과 여성이라는 인간의 몸을 초월한 몸

부활하신 예수의 몸은 더 이상 남성과 여성에 갇힌 몸이 아니다. 그의 몸은 신령한 몸이다.

2) 부활한 예수를 붙잡고 대화한 막달라 마리아와 행위를 이성애적 사건으로 왜곡

제라드 와드(Gerard Ward)는 요한복음 20:17에서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대화하고 예수님을 붙들려고 시도한 행동을 남성의 입장에 서신 예수님과 막달라 마리아가 이성애적인 사랑을 주고받은 사건으로 해석한다.

<반론> 초자연적 능력의 부활 사건을 남녀 애정 사건으로 평가절하시키는 소설적 공상이다.

와드의 퀴어적 해석은 다빈치 코드의 연장 선상으로 소설적으로 상상된 예수와 마리아 사이의 연인 관계를 예수 부활 사건에 주입시키는 젠더주의적 해석이다.

3) 부활한 예수님 옆구리에 상처에 손을 넣는 도마의 행위를 동성애적 사건으로 왜곡

제라드 와드(Gerard Ward)는 요한복음 20장 27절에서 도마가 예수님의 옆구리에 난 창에 찔린 상처에 손을 넣는 사건은 여성의 입장에 서서 도마와 더불어 동성애적인 사랑을 주고 받은 사건으로 해석한다.

<반론> 도마의 신앙고백을 도외시한 젠더주의적 왜곡.

와드의 해석은 전혀 본문과 거리가 먼 젠더주의적 왜곡이다. 실증주의자 도마는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고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했다.

4) 예수 부활을 “퀴어 성해방의 소망”으로 왜곡

중국계 미국 성공회 신부(神父)요 퀴어신학자요 미국 매세츄세츠주 켐브리지 성공회신대 교수인 패트릭 쳉(Patrick S. Cheng)은 예수의 부활이란 퀴어 성해방의 승리를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한다: “부활절이란 퀴어 성해방(queer sexual liberation)의 희망이 된다. 성 해방을 위한 퀴어 투쟁은 승리할 것이다: 이것은 부활절의 희망이다.”

<반론> 예수의 부활사건을 단지 성 해방 사건으로 젠더주의적으로 왜곡.

쳉은 예수의 부활이 사회적 죄와 억압된 제도와 왜곡된 성과 동성애 중독으로 비인간화 된 성 소수자들의 해방 사건임을 간과하고 있다 오히려 탈동성애 . 해방의 기원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옳다.

III. 성경해석론, 교회론, 구원론, 묵상론을 젠더주의로 왜곡

1. 성경은 동성애를 죄로 여기지 않는다고 왜곡하여 가르친다.

소돔과 고모라 거민이 심판을 받은 사실(창 19:1-29)은 동성애 때문이 아니라 나그네를 환대하지 않았기(“끄집어내어 알려고 했던 무례함”) 때문이라고 왜곡한다.

퀴어신학자들은 소돔 고모라 심판 이야기를 “네 아우 소돔의 죄악은 이러하니 그와 그의 딸들에게 교만함과 음식물의 풍족함과 태평함이 있음이며 또 그가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도와 주지 아니하며”(겔 16:49)에 연결시켜 소돔과 고모라의 죄악은 가난한 자들을 학대한 것이지 동성애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제닝스는 ‘동성애에 대한 정죄’는 “성서가 죄라고 판정하는 것이 탐욕과 교만과 폭력이라는 것”을 잊게 하며, “동성애자라는 것은 저주도 아니고, 범죄도 아니다. 하나님이 주신 놀라운 선물이다.”고 주장한다.

알타우스-레이드(Althaus-Reid)는 동성애가 죄가 아니고 정당한 사랑의 표현의 하나라고 하며. 오히려 이성애가 정상적이라고 하는 것이 변태적인(pervasive) 주장이고 이데올로기적 질서(the ideological order)이므로 우리는 과감히 그것을 벗어나려고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페트릭 히긴스(Patrick Higgins)는 동성애를 변태적이라고 생각하는 그것이 변태적인 사고라고 역공격한다.

<반론> “상관하리라”(야다, עךי 창 19:5; 삿 19:22)는 “악을 행치 말라”와 연관시키면 동성애 폭행인 것을 알 수 있다.

1) 롯이 소돔과 고모라의 폭도들에게 딸을 내어주려고 한 것은 이들이 성적 목적으로 나그네에 접근(“상관하리라”(야다, עךי 창 19:5)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이 롯의 딸을 거부한 것은 이들이 동성애자들이라는 사실을 입증해준다. 롯은 이들에게 “악을 행치말라”(창 19:7)고 했던 것이다.

2) 사사기 19장에서 레위 사람이 아내를 데리고 노인의 집에서 유숙할 때 그 성읍의 불량배들이 그 집을 에워싸고 주인에게 말한다: “네 집에 들어온 사람을 끌어내라 우리가 그와 관계하리라”(삿 19:22b)여기서 불량배들이 원하는 대상은 레인의 남자가 아니라 레위인 남자 자신이다. “야다:( עךי )라는 단어는 창세기 19장에서와 같이 성적 의미를 담고 있다. 이들은 이성 아닌 동성에 대하여 성행위를 하되, 상대방의 의사와 상관 없이 일방적인 성폭행을 하겠다는 것이다. 창세기 19장에서와 같이 노인은 말한다: “이 같은 악행을 저지르지 말라....이런 망령된 일을 행하지 말라 삿 노인은 나그네 대신 자기 ”( 19:23). 첩을 내어, 이들이 첩을 밤새도록 욕보여 죽게 만든다. 이런 행위는 “음행과 망령된 행위”(삿 20:6, 10)다. 이런 악은 반드시 이스라엘에서 제거되어야 한다(삿 20:12-13).

3) 레위기 18장22절은 ‘동성애를 가증한 일’이라 금하는 동성애 규정이고, 20장13절은 ‘동성애자는 가증한 일을 행한 자니 반드시 죽이라’는 동성애 판례법이다.

4) 선지자 에스겔의 소돔 죄악 책망 “네 아우 소돔의 죄악은 이러하니 그와 그의 딸들에게 교만함과 음식물의 풍족함과 태평함이 있음이며 또 그가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도와주지 아니하며”(겔 16:49)은 그 후속절 이 말하는 가증한 일, “거만하여 가증한 일을 내 앞에서 행하였음이라 그러므로 내가 보고 곧 그들을 없이 하였느니라”(겔 16:50)과 연결되어 있다. 50절에 교만하고 가증한 일이란 “동성애”를 말하는 것이다.

선지자 예레미야도 예루살렘 선지자들 중 소돔과 고모라 주민의 가증한 일을 행하는 자가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내가 예루살렘 선지자들 가운데도 가증한 일을 보았나니 그들은 간음을 행하며 거짓을 말하며 악을 행하는 자의 손을 강하게 하여 사람으로 그 악에서 돌이킴이 없게 하였은즉 그들은 다 내 앞에서 소돔과 다름이 없고 그 주민은 고모라와 다름이 없느니라”(렘 23:14). 동성애는 소돔 사람들의 유일한 죄는 아니지만 이웃을 행한 불의와 음란한 성행위 등이며 동성애는 그 중에 가장 두드러진 죄악 중 하나다.

2. 교회는 죄인들의 공동체라는 것만 강조: 동성애자 회개(한 죄인의 공동체 교회) 부인 교회는 성적 정향이 어떠하든지 그들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면 세례를 주어야 하고, 세례를 받은 사람들은 그가 어떤 성적 정체성을 가졌든지 그것은 전혀 문제가 안 되고, 이제 세례로 그가 타고 난 성이 상대화된다고 주장한다.

<반론> 죄 용서를 받은 죄인들의 공동체라는 교회의 본질을 거부하고 있다.

퀴어신학은 죄인들의 공동체라는 것만을 강조하고 교회가 죄에서 돌아선 용서받은 죄인의 공동체라는 사실을 간과한다. 독일의 보편사 신학자 판넨베르크는 동성애 결합을 결혼과 대등한 것으로 인정하는 교회는 “더 이상 하나의, 거룩한, 보편적, 사도적 교회가 아니다”고 했다.

3. 구원론: 성경과는 거리가 먼 이단적 구원론

퀴어신학은 다음의 그릇된 구원론을 주장한다.

1) 동성애자들도 하나님이 받으신다고 왜곡한다.

동성애자들도 하나님의 복내림 대상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복을 약속하였다: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창구절에 있는 18:18) “천하 만민” 에는 동성애자들도 포함된다.

<반론> 하나님의 언약과 약속은 그의 계명과 말씀을 지키고 믿는 자에게만 해당한다.

동성애자들은 여기에 배제된다고 구약과 신약은 가르친다.

사도 요한은 계시록에서 하나님이 행한대로 갚아 주리라고 말씀하신다:

“불의를 행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행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하게 하라(11절).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계 22:11-12)

2) 예수의 십자가 피 흘리심의 공로로 인한 구원이라는 대속교리가 필요 없다고 한다.

퀴어 신학은 동성애가 죄가 아니라고 하며, 그로부터 벗어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예수님의 십자가나 성령의 능력이 동성애로부터 인간을 자유롭게 할 필요도 없다. 헬미니악은 동성애 습성으로 태어난 사람들은 끝까지 그런 식으로 자신들의 사랑을 표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퀴어 신학은 구원 받는 것이 동성애를 포용하며 조장하는 삶이 된다고 주장한다.

 

<반론> 퀴어신학은 동성애를 죄로 인정하지 않으니 그리스도의 대속사역을 부인한다.

동성애도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으로 인정하니 그리스도의 대속사역이 필요 없다고 본 퀴어신학의 주장은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의 본질을 훼손한다. 정통신학은 주님의 구속사역에 근거해서 동성애를 비롯한 죄의 권세로부터도 해방될 수 있음을 주장한다.

4. 묵상을 성관계의 오르가즘과 동일시

로버트 고스(Robert Goss)는 묵상을 통한 하나님과의 범신론적인 연합의 체험을 성관계에서 겪는 오르가즘과 동일시한다: “오르가즘의 행복은 친밀하고 장엄하며 개념으로는 표현 불가능한 그리스도에 대한 묵상의 많은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다. 몸과 마음이 묵상을 통하여 함께 사랑에 참여할 때 성적이면서도 영적인 잠재성은 평범한 오르가즘의 문턱을 넘어서서 두 사랑의 파트너들을 새로운 실재의 차원으로 옮겨 놓는다.”

<반론> 묵상을 성적 절정 경험인 오르가즘에 비유함으로써 묵상을 외설화시킨다.

묵상은 하나님과의 영적인 접근이며, 이는 어떤 성적인 희열과 아무런 상관 없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 14:17).

 

III. 퀴어신학은 성경을 자의적(恣意的), 독신적(瀆神的)으로 해석해 동성애를 정당화 한 다른 괴기(怪奇) 사상이요 사도적 교리를 부인하는 이단 사상이다.

 

1. 성경 해석 방법이 젠더 이데올로기(인간을 젠더로 해석하는 무신론)에 지배되고 있다.

종교개혁적 성경 해석의 기본 원리인 “성경에 의한 성경 해석”이 아니라 “동성애는 정당하다”는 젠더 이데올로기에 지배되고 있다. 일반 이단들과 다를 바 없이 임의적 성경해석을 하고 있다. 이단인 여호와의 증인. 몰몬교, 구원파, 신천지 같은 이단에서는 성적 음란을 공개적으로 조장하지 않으나 퀴어신학은 21세기 성문화에 어필하면서 음란과 방탕을 미끼로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을 영적으로 무력하게 만든다.

 

2. 퀴어신학은 예수를 동성애자로 보면서 기독교를 동성애교로 만들고 있다.

그러나 예수는 동성애자나 간음한 자들을 회개하라고 하신 자다.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요 8:11)

 

3. 퀴어신학자들은 퀴어축제, 성평등 정책, 동성애 차별금지법 제정을 지지하여 음란과 방탕을 공개적으로 지지한다.

퀴어신학은 성경이 음란과 타락을 용납하고 정당화 한다고 해석하여 심지어 기독교인들이 동성애 행위를 하고 동성 결혼을 하는 것을 종교적으로 제도적으로 허용하고자 한다.

미국, 영국, 캐나다의 주요교단(미 연합장로교, 루터교, 감리교, 성공회, 그리스도교회, 구세군 등)들은 동성애자들에게 성찬과 세례를 주고, 심지어 동성애자 항존직(목사, 장로 안수집사)을 허용하고 이들에게 안수하고 있다.

 

4. 동성애는 가증한 일(성 중독)이고 이를 지지하는 퀴어신학은 교리적으로 이단 사상이다.

이러한 성경이 명백히 가증하다(detestable, 레 18:22)고 정죄한 동성애를 미화시키나 윤리적으로 문제 없다고 보고 동성애를 언약의 무지개로 본 장신대 무지개 사태는 심각한 신학적 이단적 행사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동성애와 동성 결혼을 성경적으로 지지하는 퀴어신학은 교리적으로는 이단사상이라고 말할 밖에 없다.

이단사상 가운데 크게 두 가지 부류가 있다. 하나는 교회 친화적 이단과 교회 적대적 이단이다.

교회적대적 이단이란 통일교, 천부교, 여호와의 증인, 몰몬교, 안식교(제7일 안식일 예수재림교), 신천지, 하나님의 교회(안상홍파) 등 기존 역사적 교회를 이단으로 보고 구원이 없다고 보고 기독교와는 전혀 다른 조직으로 기독교에 대하여 적대적 입장을 취하는 이단이다.

교회기생적 이단이란 교회 안에서 일어나 기존 교회의 교리에 새로운 해석을 하여 새로운 분파 운동으로 나타나는 운동이다. 초대교회 시 갈라디아교회에서 일어난 유대주의자들(은혜에다 할례 첨가), 4세기 어거스틴의 은혜 교리에 대하여 반대하였던 펠라기우스(인간의 자유의지 강조), 타락한 성직자들의 성례 효력에 관련하여 효력 없다고 선언한 도나투스파, 루터의 노예의지론에 대하여 자유의지론을 주장한 에라스무스.

그리고 루터의 이신칭의 교리에 대하여 은혜와 공로를 결정한 17세기 트렌트 회의 등이 교회친화적 이단 사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필자는 동성애 교리를 성경적이라고 보는 퀴어신학은 단지 동성애 행위만이 비윤리적일 뿐 아니라 이러한 교리를 인정하는 퀴어신학의 전 체계가 삼위일체 하나님 교리와 구원론, 교회론을 총체적으로 외설화 하기 때문에 이러한 교회친화적 이단 가운데 보다 심각한 상태라고 본다. 이러한 교회 친화적 이단은 이미 역사적으로 있어왔는데 남왕국 유대나 북왕국 이스라엘의 유대교 안에서 야웨 신앙과 함께 있었던 바알 신앙, 두 신앙의 혼합이었던 혼합주의 신앙을 말한다. 오늘날 기독교는 혼합주의(syncritism)를 경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기독교는 이 시대의 이데올로기인 젠더교로 변화될 것이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역사적 기독교는 젠더 기독교로 변모될 것이다.

 

5. 동성애 복음은 사도적 복음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아니다.

퀴어신학은 동성애는 하나님이 허용한 것으로 보고 동성애자들이 회개할 필요 없이 천국에 간다는 동성애 복음을 전하고 있다. 이는 죄인(동성애자 포함)이 회개하고 예수롤 믿고 새 사람(탈동성애자)이 되도록 하고 거룩한 성도의 성화의 삶을 살도록 하는 사도적 복음과는 다르다.

그러므로 오늘날 사도 바울은 동성애 복음에 대하여 똑 같은 경고의 말을 할 것이다: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17절).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 1:7-8)

퀴어신학 추종자들의 신앙은 예수를 동성애자로 보고, 하나님을 동성애를 허락하시는 분으로 성령을 동성끼리의 성애를 일으키는 분으로 본다면 이는 선지자들, 사도들, 교부들, 종교개혁자들이 전해준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 신앙에서 이탈하는 배도(背道)다.

 

6. 장신대 교수회가 발표한 “동성애 문제에 대한 교육 지침”은 동성애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애매한 태도를 보여주었다.

“동성애 문제에 대한 교육 지침”은 오늘날 세계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동성애 논쟁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고, 이에 정면으로 대결하기를 회피하고 있으며 교회와 신학계에서 전개되고 있는 정통개혁신학의 입장에서 동성애 비판운동에 함께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이에 대하여 비판적 입장을 개진하고 있다. 그러므로 학생들 사이에 동성애 무지개 사태에 대하여 분개하는 글이 올라오는 것이다. 이는 오늘날 세계적 장로교대학이라고 명성을 자랑하는 장신대가 교회와 사회와 시대를 직면해서 갖는 역사적 소명에서 회피하는 모습을 드러낸다. 지난 전국 대학 교수들이 동성애 개헌반대한 동반교연의 교수 서명(전국 348개 대학 3,239명 교수 서명/2018년 7월 27일 현재)에 장신대 교수들의 무관심과 아주 저조한 참여수를 보고 많은 동료 교수들과 목회자들과 평신도들이 실망과 의아심을 가지게 된 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오늘날 한국교회 목회자들과 신학자들은 동성애 이슈에 대한 교회의 순결을 지킴과 관련하여 사도 요한이 요한계시록에서 세상 권세를 상징하는 적그리스도의 세력의 화신인 바벨론 세력의 교리적 침투에 대항하여 예수 그리스도 교회의 교리 순결성을 지키기 위하여 언급한 다음 예언의 말씀이 바로 오늘날에도 타당한 하나님 말씀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18절)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계 22:18-19)

 

7. 예장 통합교단은 교단 신학교인 장신대에 대하여 성경과 교회법에 상응한 조처를 해야 한다.

장신대 대학원생이 7월 19일 학교 인터넷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린 글은 의미심장하다: ““동성애자를 상징하는 무지개기는 성경에서 금하는 동성 성행위를 조장하고 이를 인권으로 미화시키는 퀴어축제에서 단골로 등장한다” “무지개 기는 성경에서 금하는 동성 성행위에 대한 옹호와 동성결혼 합법화에 대한 옹호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러한 상징을 가지고 있는 무지개 기를 우리 학교의 공적인 예배인 채플에서 게시하고 단체로 사진 촬영을 하고 또 이 사진을 SNS 상에 공개적으로 게시한 행위는 자신들이 무지개 기 “상징하는 바 동성 성행위와 동성 결혼 합법화를 옹호한다는 의사표현으로 보기에 충분하다””면서, “이것은 동성애 옹호 행위와 동성 결혼 합법화에 반대한다는 것을 분명히 한 제102회 (통합) 총회의 결의에 정면으로 반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동성애 무지개 사건 후 학교 당국은 이들 학생들에 대한 징계와 지도를 아직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이제 총회기 나설 때이다.

 

8. 예장 통합 교단은 장신대가 오늘날 미국의 연합장로교 교단 소속의 동성애 허용한 신학교들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해야 한다.

PCUSA는 지난 2012년 총회에서 동성애자 목사 안수를 막아 왔던 교단 헌법의 ‘정절과 순결 조항’(제직자는 남성과 여성 결합의 신실한 결혼 정립 및 혼전 순결을 조건으로 한다)을 이미 삭제했다. 동성애자 목회자를 인정한지 2년 만에 PCUSA는 이제 동성결혼에까지 찬성하는 쪽으로 돌아섰다. ‘한 남성과 한 여성의 결합’이라는 결혼의 정의를 ‘두 사람의 결합’으로 바꾼다는 개정안도 통과시켰다. 이것은 청교도 위에 세워진 미국이 오바마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동성 간의 결혼을 인정한 이후 내려진, 미국 기독교의 비극이 아닐 수 없다.

퀴어신학을 수용하면서 이에 반대하여 탈피한 복음주의 교회들이 모여서 2012년 6월 22일 개혁적 복음주의(reformed evangelical)로 선을 걷는 보수적인 장로교단(ECO, A Covenant Order of Evangelical Presbyterians, 복음주의언약장로회)이 생겨났다. PCUSA에서는 정절과 순결 조항 삭제 이래로 교인 수가 해마다 약 6만 명씩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잔 6년 동안 근 2백만 교인들이 동성애 수용 주류 교회에서 탈퇴하여 ECO 교단 교회 등 보수적인 교단 교회로 옮겨가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이런 배경에는 이미 미국 소속 장로교신학교들 PCUSA (프린스턴신학교, 샌프란시스코신학교, 맥코믹신학교, 내쉬빌신학교, 컬럼비아신학교 등)이 동성애를 받아들이고 이런 “동성애는 괜찮다” “윤리적 소신의 문제다”고 가르치는 신학교육을 받은 신학생들이 졸업하고 목회자가 되어 교단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이런 교단 분열과 교인들의 이동이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 예장통합교단은 정통개혁신학의 전통을 바로 계승하고 이번에 교단 신학교가 동성애와 퀴어신학에서 완전히 결별하는 신학적 결정과 교단적 조처를 취해 주었으면 한다.

                 김영한 교수(기독교학술원장/ 샬롬나비상임대표/ 숭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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