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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想像)과 가정(假定) 속의 보이지 않는 우상(偶像)을 경계하라!]신앙이란 살아 계신 하나님과의 만남이다. 이를 확인하게 하는 것이 성령의 역사이다.
종교와진리 | 승인 2016.02.19 21:07
주영세목사/본지 미국지부장,전문연구위원 / 서울대학교 물리과졸업

 

우리는 지금 하나님을 바로 믿고 있는가?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독생자, 우리들의 구세주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악(惡)한 인간들에 의하여 골고다의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시는 순간, “이에 성전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었다”(마27:51). 이로서 인류는 더 이상 창조주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듣고, 그의 존재를 가시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하였다. 인간의 가장 큰 불행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인류는 이제 하나님과의 유일한 통로는 예수님에 의한 <성령(聖靈)의 역사(役事)>에 의존하여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 이 지구 상에는 수 많은 교회와 신도들이 있지만, 주 예수님의 부활 승천 후에 나타난 그와 같은 성령의 역사는 현재 보이지 않고 있다. 오늘날, 기독교 안의 어떠한 교단(敎團), 교파(敎派), 또는 교리(敎理)나 신학(神學)도 이를 명쾌하게 밝히 나타내 보이지 못하고 있다. 결국, 모두가 불완전 것을 나타낼 뿐이다.

불행이도 사람들은 모두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성경이 바로 가르치는 진실한 하나님을 깨닫지 못하고, 각자가 잘 못 생각하는, <자기 상상(想像) 속의 하나님>만 믿고 있을 뿐이다. 대단히, 그리고 매우 위험하고 위태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잘 못하면, 인간인 자기 자신이 부지불식 간에 만든 하나님에 대한 하나의 <보이지 않는 우상(偶像)>이 될 수도 있다. 이 점을 우리는 매우 조심하여야 한다.

하나님은 마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나, 요한 칼빈(John Calvin, 1509~1564)이나, 죤 웨슬레(John Wesley, 1703 ~ 1791)의 하나님 만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그들의 신앙 고백을 옳다고 생각해서이다. 오늘날, 장로교(長老敎)에서 요한 칼빈(John Calvin)과 같은 믿음과 정신(精神)을 찾아 볼 수 없고, 감리교(監理敎)에서 요한 웨슬레(John Wesley)의 신앙과 정신을 찾아 볼 수 없는 현실에서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을 바로 깨닫고, 믿을 수 있는 것일까. 다시 잘 생각해 보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가 찾는 하나님은 칼빈만의 하나님이 될 수 없으며, 마틴 루터나, 요한 웨슬레 만의 하나님이 될 수는 없다. 세월이 흐르고, 인간들의 세상에 대한 지식이 많아졌으나, 오히려 하나님을 향한 신앙(信仰)은 500년 전에 마틴 루터나, 칼빈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 오늘의 인류는 하나님으로부터 가까워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으로부터 더 멀어졌다고 할 수 있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많아지고, 하나님의 말씀이 더 많이 전파되면 세상은 밝아지고, 사람들이 선(善)하여져서, 사람들이 살기 좋은 세상이 되어야 할텐데, 현실은 우리의 기대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세상은 더 교활(狡猾)하고, 살기 어려워 가고 있다. 이것은 기독교(基督敎)가 바로 전파(傳播)되고, 교회가 바로 세워지고 있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모두가 하나님을 빙자한, 자기 배를 위한 <밥벌이> 밖에는 안된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 하시리라 (마6:31~33).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눅17:20~21) 라고 하셨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목사들이 강조하기를, 교회에 나오면, <모두가 다 잘 살게 된다>고 말한다. 물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못 살게 되는 것은 바람직한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이 주신 귀한 복음은 한 영혼의 <구원의 은혜>와 <영생의 축복>에 관한 것이지, 세상에서 먹고 마시는 일에 관한 것이 아니다. 오늘날 신도들의 대부분의 기도가 먹고 마시는 세상에서 자기와 자기 가정의 안일과 행복에 관한 것이고, 자신의 영혼에 대한 <구원의 은혜>와 <영생의 축복>에 대한 감격과 감사의 기도가 아니다. 분명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마5:45)라는 말씀의 뜻을 잘 깨달아야 한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는 믿는 사람의 밭에도 내리고, 믿지 않는 사람의 밭에도 내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이 땅에서 제국(帝國)을 건설하고, 잘 먹고, 잘 사는 것에 한해서는, 오히려 하나님을 믿지 않는 민족들이 더 잘 할 수 있다. 과거의 에집트와 바빌론, 그리고 로마가 그리하였다. 역사가 이를 잘 나타내고 있다.

인간의 불행은 고통 중에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는데 있다. 평상시 잘 먹고, 잘 살 때에는 하나님을 찾는 법이 없다. 과거에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선택함을 받은 유대 민족이 그리 하였다. 배 부를 때는 자기 잘난 멋에 하나님을 멀리하고 있다가, 꼭 병이나, 기근이나, 전쟁을 통하여 죽게 되면 하나님 앞으로 와서 하나님을 찾았다. 그러다가, 종래는 하나님을 거역하는 바람에 <축복의 대상>에서 <진노와 저주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이것이 인생들이 가는 길이다.

옛날에는 그 나마,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성전과 제사장들이 있었다. 그러나, 현대의 교회에서는 예루살렘 성전과 같이 하나님의 임재를 확인할 수 있는 교회와 제사장이 없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성전의 휘장을 찢어 버리셨다. 그 의미는, 다시는 이와 같은 방법으로는 죄 많은 인류들과는 만나시지 않으시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 인류는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을 만나 볼 수 있는 것일까.

성령의 역사가 없으면, 예수님의 초림과 부활 승천에 관한 사실들이 역사적인 지식으로만 남는다. 그러나, 신앙은 역사적인 사실만 믿는 지식의 탐구에 있지 않다. 신앙이란 살아 계신 하나님과의 만남이다. 이를 확인하게 하는 것이 성령의 역사이다.

오늘날의 문제는 인류들이 성령의 역사를 모르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자기가 아는 것 같이 말만하면, 확인할 길어 없기 때문에, 거짓말을 하여도 믿게 된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아야 한다. 성령을 거역하면 용서함을 받지 못한다고 하였다. 사도 행전에 보면, <아나니아와 삽비라>에 대한 기록이 있다(행5:1-11). 이 원칙을 현대인들에게 적용한다면, 살아 남을 사람들이 거의 없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인류들이 이 원칙에 어떻게 순응하고 있는가를 살피고 계신다. 그들만 그러한 죽임을 당하였다며는, 그들은 억울하기 한량이 없을 것이다. 하나님이 어떻게 무서우신 분인가를 바로 깨달아야 한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처럼 성령을 속이고, 이를 숨길 수가 있는가.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이 것이 가능하다는 생각에 강대상에서 자기 마음대로 떠들고, 마음대로 행동하고, 거짓말 하고, 사람들을 속이고 있다. 하나님은 과연 그러하신 분인가. 잘 생각해 보아야 한다.

성경에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믿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고, 고통을 받는다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말씀과 목사들의 말이 상치되고 있다. 이것은 목사들이 자기 욕심을 위한 거짓말은 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로서, 모두가 기독교 같으나 결코 기독교 같지 않은 교회, 교회 비슷하기는 하지만 교회가 아닌, 그리고 기독교를 빙자한 각종 이단들이 날 뛰고 있는 현실이다.

판단 기준은 <오직 성경뿐>이다. 전하는 복음의 내용이 성경을 읽지 않아 성경 지식이 모자라거나, 이해가 부족하여 바로 깨닫지 못해도 안되고, 성경의 내용과 범위를 벗어나는 헛소리를 하여도 안된다. 사람에게는 이 일 자체만 하여도 불가능한 일이다. 이 세상에 성경에 통달하여 모든 것을 깨닫고, 완전히 이해한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러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통한 역사를 강조하신 것이다. 사람이 모든 것을 깨닫고, 말씀대로 살며, 행할수 있다면 구태어 성령의 역사를 강조하실 필요가 없는 것이다. 사람은 성경에 있는 그대로만 전하면 되는 것이다. 사람에 의한 가감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는,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惡)으로 좇아 나느니라”(마5:37)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과 함께 하였던 베드로는,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벧후1:20-21)라는 주의를 하고 있으며, 제자 요한도 계시록에서,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이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계22:18-19)는 경고를 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알면 아는대로, 모르면 모르는 대로 진실하고, 정직하게 말씀만 전하면 되는 것이다. 강대상 위에서“뭐뭐라고 생각된다”든지, “그럴 것 같다”라는 식의 말을 해서는 안된다. 교인들 또한 이러한 목사들을 예리하게 살펴보아 함께 넘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주영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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