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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사냐 아니면 인격이냐?부제: 믿음과 선한 양심
종교와진리 | 승인 2016.02.17 10:08

 

최근 미국 교회의 목회자들에 대한 기사를 읽었다. 한 목사가 교인들을 설득시켜 받은 돈으로 주식 투자한 후 이익을 갈취했다. 다른 목회자는 구소련 시대 출신 러시아인으로 미국 교회의 목회자로 신분을 세탁한 후 검은 돈 세탁 전문가로 일했다.

(참고: 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199902)

이들은 사역하는 교회에서 존경과 사랑을 받는 목회자들이었다. 이들의 목회적 은사가 나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러나 목회적 자질에선 부실했다. 그것이 그들을 믿음의 파산자로 드러나게 만들었다. 흔히 신자들은 목회 자질보다 은사를 더 선호한다. 한국 교회도 예외는 아니다. 이제 목회자의 불의와 부패는 국제적이다. 이런 기사를 대하면서 질문이 생겼다.

"목회에 중요한 것은 은사냐 아니면 자질 또는 인격이냐?"

이 둘 중 어느 하나를 버리게 하는 '대립적 이분법'은 금물이다. 목회를 위해 자질은 물론 은사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선후(先後)의 문제라는 '논리적 이분법'에 속한다. 이들 중 어느 하나도 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자질이 먼저요 은사가 나중이다. 목회자를 초청할 때 은사들보다 자질이나 인격을 먼저 보란 뜻이다.

그러나 교회에서도 자질이나 인격보다 은사가 더 중요하다. 서구 유럽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목회자는 초청 일 순위 대상자가 된다. 목회자들이 중대형 교회의 초청을 받기 위해 없는 학위도 만들려 한다. 또는 학위는 받았어도 인격이나 자질 부족이 드러나며 그의 위대한 은사가 무용 지물이 되고 자신의 개인적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수단과 방법으로 전락한다.

때 늦었지만 은사와 인격 사이 문제에 대한 성경적 가르침을 알아야 한다.

사도 바울도 교회와 목회를 위해 각종 은사들이 필요함을 알았다. 사도 바울은 성령의 은사들을 9가지 소개한다. "어떤 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고전12:8-10절)

그러나 그는 성령의 열매도 9가지 소개한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5:22-23절)

성령의 은사들과 열매 사이 차이가 분명하다. 전자는 기능적이라면 후자는 인격적이다. 그러므로 은사는 복수로 그러나 열매는 단수로 설명된다. 그리고 전자는 목회를 할 때 하나님의 필요에 의해 일시적(一時的)으로 나타나는 기능적 역할이나 직분과 그러나 후자는 목회가 아닌 개인 신자의 신앙 삶에서 상시적(常時的)으로 맺어야 할 인격적 성숙과 관계된다.

달리 말해 은사는 직분의 수행을 위한 역할이나 기술(技術)이라면 열매는 이런 기술을 통제하도록 돕는 윤리(倫理)이다. 그렇다면 상식적으로도 그리고 성경적으로 기능적 은사보다 인격적 열매가 더 중요하다. 그러므로 목회자의 자질 또는 인격은 은사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성경은 특정 목회자가 성경을 잘 알고 설교를 잘 한다는 것이 목회자의 초청 일 순위가 될 수 없다고 가르친다.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과 믿음이 성령의 은사들로 취급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가히 충격적이다. 설교 능력은 인격과 무관한 기능 또는 기술에 지나지 않는다. 일정 기간 노력만 하면 누구나 모두 얼마든지 설교를 잘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기술과 기능, 역할 또는 직분을 통제할 수 있도록 돕는 성숙한 인격의 소유자인가를 더 살펴야 한다. 그러나 은사보다 인격을 택했다고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이와 관련하여 사도 바울이 이렇게 경고한다.

"경계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나는 사랑이거늘 사람들이 이에서 벗어나 헛된 말에 빠져 율법의 선생이 되려 하나 자기의 말하는 것이나 자기의 확증하는 것도 깨닫지 못하는도다"(딤전1:5-7절)

'청결한 마음'이란 '청결치 못한 마음'이 있음을 암시한다. '선한' 양심도 '나쁜' 또는 '악한' 양심을 전제한다. 그리고 '거짓 없는 믿음'도 '거짓 있는 믿음'이 있음을 가르친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렇게 충고한다.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이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딤전1:19절)

우린 항상 '믿음'만을 거듭 그리고 늘 강조한다. 그러나 착한 양심에 근거를 두지 않은 믿음도 있다고 사도 바울은 우리들에게 경고한다. 위에 언급된 미국 목회자와 한국의 많은 목회자들은 강대상에서 늘 믿음을 말하지만 착한 양심에 바탕을 두지 않는다. 이것이 결국 그들을 믿음의 파선자로 만들었다.

기독교 신학에서 믿음은 구원과 관련하여 그러나 양심은 율법과 연결시켜 늘 설명된다. 이신칭의만 강조하다 보니 율법은 무시되었고 이 결과 양심도 소홀히 다룬다. 이 때문에 교회는 착한 양심에 무관하게 이신칭의를 가능케 하는 믿음만 늘 강조된다. 그러나 착한 양심에 근거를 두지 않은 믿음의 소유자는 믿음의 파선자라고 바울은 증언한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사도로 부름을 받아 어떻게 일했는지를 유대인들 앞에서 증언했다. "바울이 공회를 주목하여 가로되 여러분 형제들아 오늘날까지 내가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 하거늘"(행23:1절) "이것을 인하여 나도 하나님과 사람을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노라"(행24:16절)

그는 양심에 벗어나지 않게 하나님을 공경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양심에 거리끼는 일은 한 적이 없었다. 사도 바울은 오늘날 기독교 신학과 달리 인간의 양심을 중요하게 보았다. 양심은 구원 받고 난 이후 신앙 삶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칭의는 믿음으로만 가능하지만 성화는 양심(또는 윤리)과 깊이 관계되기 때문이다.

그럼 성화 삶을 가능케 하는 사랑은 어떻게 가능한가? 사도 바울이 답한다. "경계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나는 사랑이거늘 사람들이 이에서 벗어나 헛된 말에 빠져 율법의 선생이 되려 하나 자기의 말하는 것이나 자기의 확증하는 것도 깨닫지 못하는도다"(딤전1:5-7절)

참 사랑은 청결한 마음, 선한 양심과 거짓 없는 믿음에서만 나온다. 마음, 양심과 믿음을 윤리적 관점에서 살피는 것은 너무나 중요하다. 사랑도 거짓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목회나 신앙 삶에서 은사보다 인격을 더 강조하고 신앙 성숙을 위해 청결한 마음, 선한 양심과 거짓 없는 믿음을 계속 가르쳐야 한다. 성부 하나님의 예정과 선택의 목적은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흠 없는 존재로 서는 것이기 때문이다(엡1:4-6절).

창조기사도 이를 증언한다. 모든 것을 창조한 하나님은 인류 사회에 문화사명(창1:28절)을 명했다. 문화사명의 목적은 이 세상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것이다(창1:26-27절). 인류의 생육, 번성과 땅에 충만을 위해서 인류는 서로 사랑해야 한다. 청결한 마음, 선한 양심과 거짓 없는 믿음에서 나온 사랑만이 종국적으로 하나님 나라를 인류 사회 안에 건설하게 한다.

이를 실천하도록 하나님은 가장 간단한 율법인 선악과 규례를 인류에게 주었다(창2:17절). 사람들 사이 선과 악을 판단하게 하는 선악과를 먹지 않고 문화 사명을 수행하는 것만이 하나님의 인간 창조 목적을 달성시킬 것이다. 결국 문화 사명은 사랑으로 수행되어야 한다. 이 점에서 시내산 율법(출20-24장)도 다르지 않다.

이스라엘이 시내산 율법을 준수할 때 가나안 땅에 하나님 나라가 세워질 것이다. 율법의 핵심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다(막12:33절). 출애굽 사건 후 하나님은 시내산에서 율법을 줌으로 이스라엘을 사랑이 다스리는 하나님 나라로 가나안 땅에 세울 것을 선민에게 명했다. 그러므로 율법은 이행득구의 수단으로 주어지지 않았다.

출애굽 사건이 의미하는 이신칭의 후 이스라엘에게 시내산 율법은 반드시 필요했다. 율법은 타락한 인류의 악한 양심을 통제시키고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케 함으로 선한 양심으로 살도록 돕는다. 다시 말해 구원 이후 양심은 성화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히브리 성경에서 마음이란 단어는 번역본에서 양심으로 소개된다. 양심의 자리는 마음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격의 좌소이기도 한 마음으로 신자들은 신앙 삶을 산다. 마음은 은사와 달리 늘 우리의 삶을 지배한다. 마음이 하나님 앞에 청결하냐 여부가 신앙 삶과 목회를 좌우한다. 목회나 신앙 삶을 위해 은사보다 인격에 보다 더 큰 관심을 두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사회는 인격보다 성공과 출세를 가능케 하는 은사에 더 관심을 둔다. 우린 지금 부(富)의 정도가 출세와 성공 여부를 가늠하는 시대를 산다. 큰 교회의 목사는 무조건 성공한 목회자로 준경 받는다. 성경의 가르침과 정반대 현상이 정상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분명히 지금은 말세지말이다. 이 시대의 남은 자들이여! 말씀을 붙잡고 시대를 이겨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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