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뉴스 칼럼
그리운 청백리 초복(草福) 목자상과거, 목숨보다 귀했던 복음
종교와 진리 | 승인 2016.05.20 21:43

 

우리나라에 개신교가 최초로 전래된 이래. 일제 압박시대와 계몽기를 거치면서 교회는 양적인 증가와 함께 무질서를 동반하였다. 기독교가 유교사상의 틀을 깨고 비집고 들어오기란 그리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본국을 떠나 타국에 선교하러 와 아무 연고도 없는 사람들 앞에서 단지 복음을 전한다는 이유 때문에 조롱과 멸시를 받으며 그들의 창칼에 순교하기 전까지 대동강변 모래사장에 무릎을 꿇고 최후의 기도를 드리면서 복음을 전했던 순교자들의 헌신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교회에 다닌다는 것 때문에 문중의 축출을 받고 구타당해 피를 토하며 뿌렸던 복음이 열매를 맺어 결국 그 지역에 10여 개 남짓 교회가 세워지는 등 믿음의 승리는 이어졌다. 그러할 당시의 부흥회는 사경회가 주류를 이루어서 조용하게 말씀에 귀기울이고 철저한 교회봉사와 어두운 사회에서의 빛과 소금이 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행하기를 힘썼다. 그러나 오늘날의 부흥회는 심령의 변화보다 육적 치병이나 신령한 은사에 치중하여 있고 요란하고 소란하다. 외형상으로는 부흥이 되는 것 같으나 하나님은 꼭 그렇게만 역사 하시지 않는다. 오히려 세미한 음성(왕상19:13)가운데 나타나신다. 이는 마치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을 버리고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을 기뻐하는 것(사8:6)과 같은 것이다.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소위 기도원이랍시고 사람이 죽어나가도 눈 하나 깜짝 안하고, 못 고치는 병이 없는 천국 종합병원 의사라고 하면서 애가 죽어 피가 나오는데 귀신이 빠져 나오는 거라며 함부로 성령을 들먹이며 무면허 의료행위를 하는가 하면, 손가락으로 살을 긁어낸 뒤 부항으로 피를 뽑아내는 불안수, 머리와 이마에 3백 번의 금침을 놓는 침술 안수, 환부에 밀가루 반죽 한 것을 발라 기도하면 낳는다는 밀가루 안수...신앙의 힘으로 병을 고친다며 행해지고 있는 갖가지 의료행위들...심지어 수원의 한 교회에서는 안수기도를 받던 13살 초등학생이 갈비뼈가 부러지고 온 몸에 피멍이 든 채 숨지는 사건이 일어났음에도 교회들은 어떤 대책을 마련한다거나 문제해결을 위한 강구를 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종교시설이라는 이유로 행정당국의 아무런 규제나 통제를 받지 않고 법의 사각지대에 방치되어 전국 곳곳에 난립해 있는 수 천 개의 기도원들에 대한 법적 대책이 서지 않고서는 그 해결이 어려운 것인가, 아니면 우리 기독인들이 힘을 합쳐 난잡한 기도원들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가,

몇 년 전, 모 교계신문에 부흥사계 조직폭력배 동원이 사실로 드러났다는 기사가 났었다.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개최된 민족통일기도대성회에 부흥사로 활동하고 있는 C목사가 강제적으로 집회를 유도해 내기 위해 1백 5십 만원을 주고 동원시켰다는 것이다. 부흥사계에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은 더 이상의 말이 필요 없을 정도임을 여실히 보여주는 일례라 할 수 있다.

부흥사들이여, 몇 백 명, 몇 천 명, 모이는 강단에 서기보다 바로 당신 자신이나 당신의 가정, 당신의 바로 옆집의 사람, 그리고 시무하는 교회에 먼저 관심을 가져봄이 어떠실까, 참된 심령 부흥이 일어난 부흥사가 외모에 신경쓰고 사례비에 신경쓸까? 위대한 종이라 불려지는 것을 좋아할까? 손목에 야광 되는 것 붙이고 캄캄한 어둠가운데 안수하며 신령한 빛이 나가는 듯 보이려 하는가? 목소리 걸걸하게 나오게 하려고 성대수술 하는가? 그것도 부족해 최면술 배우러 다니는가?

그 많은 부흥사들이 외쳐댔던 설교의 능력이 과연 어떻게 열매 맺고 있는가? 힘을 잃은 기독교, 마이너스 성장, 이혼율 증가, 세상을 좇아가는 청소년들, 영적 무감각의 시대... 잠시 입을 다물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우선순위가 아닐까,

먼저 부흥사 자신들의 내면 깊숙이 박혀있는 열등의식과 허풍이 사라지지 않는 한 부흥사라는 이름에 걸맞은 참된 부흥은 일어날 수 없을 것이다.

한국교회, 목회자 홍수시대

몇 년 전, 천안 고려신학대학원에서는 한국교회의 현실이 어떤 지경에 이르렀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세미나가 열렸었는데 그날 총신대 신대원 모 교수는 대한예수교 장로회 합동 측의 경우 교회를 담임하지 않는 목사의 수가 4,350명으로 전체 목사의 44.1%를 차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한 마디로 목사가 넘쳐나고 있다. 목회자들 사이에서는 ‘목사공해’라는 말이 아무렇지도 않게 오고가는 실정이다.

현재 한국교회는 정확한 통계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목회자 수가 6만여 명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특히 한 해에 각 신학교와 무인가 신학교에서 배출되는 목회자 수는 무려 5천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목회자의 수가 많고 적음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목회자의 질이 문제이다. 한국교회는 도덕적으로나 인격적으로 훌륭한 목회자를 양성하는 데는 그리 성공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각종 여론 조사에서 존경하는 인물가운데 과거에는 앞에서 몇 순위 안에 들었던 목회자가 근래에는 꼴지 그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교세확장이 목적인가? 돈벌이가 목적인가?

이것이 현실이다. 가슴을 치고 통탄해야 할 이러한 세태임에도 시대를 읽지 못하고 무감각한 심령으로 우리는 지금 무엇을 외치고 있으며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일반 젊은 대학생들도 부정부패를 보고 사회개혁이니 정치개혁을 외치건만 인간 영혼의 죽고 사는 문제를 다루는, 소명받아 생명 걸고 복음을 전하겠다는 신학도들은 자기의 안위와 영달만을 추구하고 있지는 않는가, 무엇을 보고 목회지를 정하는가, 무엇 때문에 기득권 세력 앞에서 그렇게 고개를 숙이는가, 부흥사가 되겠다고 무엇을 연습하고 있는가, 옳지 못한 것을 보고도 왜 엘리후처럼 담대히 맞서지 못하는 것인가, 시대가 문제인가? 나 자신이 문제인가?

이러한 목사님이 그립습니다.

재물과 돈을 모으는데 우선권을 두지 않고 진정한 재산이 있다면 그것은 ‘거룩한 생각과 일’에 있다고 보는 사람, 복음을 진정으로 설교하려고 힘쓰며, 교인들을 헌신적으로 가르치려고 하고, 온화하며 근면하며 역경의 시기에도 인내하며 모든 일에 만족하며 살며, 교회 안의 가장 가난한 사람에게도 기꺼이 주는 것을 기뻐하며 적은 것으로 만족하며 풍족하게 살며 성결하며 덕이 있고 죄인들에게 대해서 경멸하지 아니하며 언사에서는 오만하지 아니하며, 높은 자이든 낮은 자이든 책망하며 때론 매우 날카롭게 꾸짖으며 헛된 명예나 존경에 목말라 하지 않으며 아무리 바빠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으며 아무리 바빠도 남의 눈물 읽는 데는 게을리 하지 않으며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교훈을 먼저 몸소 실천하는 그러한 목회자가 그립다.

목사는 무엇을 추구하는 사람인가? 거룩한 생각 대신에 치졸하고 불경하고, 저속한 것을 은밀한 가운데 계획하고 생각하는 우매한 목사들이 우리 가운데 너무 많다고 생각지 않는가?

속으로는 돈을 추구하며 재물을 탐내면서, 겉으로는 복음을 전한다는 미명아래 교인들을 착취하는 어리석은 직업 전문 부흥사들이 이 시대에 얼마나 많은가? 연말 예산결산 위원회의 시 내년도 목사 사례금 책정에 초연했던 목사들이 얼마나 있었는가? 개탄할 정도로 목사의 이미지는 땅에 추락하여만 가고 은밀하게 세속적인 물질을 추구하는 목사들이 너무 많은 시대가 되었다.

복음의 사역자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공언하는 사람이 월급이나 사례금 그리고 교회로부터 반드시 받아내야만 한다고 생각되는 다양한 혜택(예를 들어, 자동차, 사택관리비, 자녀교육비, 학위를 위한 목사 교육비, 출장비, 심방비, 손님 접대비, 판공비!)에 대해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을 평신도들이 보았거나 들었을 때처럼 그들의 마음을 가장 심각하게 상처를 내고 그들로 하여금 사역자로부터 가장 빨리 등을 돌려대게 하는 일들은 없을 것이다. 교인들의 마음을 멍들게 하기보다는 적당히 참을 수 있을 정도의 상황아래 사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다.

강단에서 ‘쌍칼’(?)을 들고 하나님의 축복과 저주를 자기 마음대로 휘두르는 무당과 박수같은 목사들이 있다는 사실은 매우 불행한 현실이다. ‘목사를 잘 섬겨야 축복 받는다’, ‘주의 종을 잘 받들지 않으면 저주받는다’, ‘십일조를 내지 않으면 교통사고나 질병 등과 같은 재앙으로 비극적으로 죽는 수가 있다’ 등과 같은 문구들이 때로는 직설적으로 혹은 매우 완곡된 표현으로 교인들에게 주입된 신학적 명제들이 된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 또한 불행이며 암울한 현실이다.

부패하고 게으른 목사는 무섭고 소름끼치는 늑대가 양을 잡아먹도록 양떼를 방치한다. 직무를 유기하는 목사가 많이 있다. 정작 돌보아야 할 양들을 돌보지 않고 ‘다른 일들’에 수많은 시간을 소비한다. 자기의 명예를 위하여 각종 기관의 ‘장(長)’ 자리를 추구하다가 목이 길어진 분들이 있다. 특별히 자기 열등감에 빠진 사람일수록 그런 성향이 많이 있다. ‘시찰장’, ‘노회장’, ‘총회장’, ‘각종 교단장’ 자리들을 탐하고 목말라 하는 우리 시대의 어리석은 목사들이 얼마나 많은지 가슴칠 노릇이다. 어울리지도 않는 박사 학위를 고집하여 혈세와 같은 교인들의 헌금을 남용하는 사람들도 있다. 목사의 ‘목회학 박사’ 학위 취득예배를 교회 재정으로 드려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정도의 한국 교회라면 그 장래는 매우 암울한 것이다. 교인들이 낸 헌금을 자기 마음대로 사용하여 총회장, 노회장이 되는데 사용한다면 이는 하나님의 심판을 초래하는 무서운 죄악일 것이다.

자신의 이력서에 줄이 모자랄 정도로 거짓되고 헛된 명예로 가득 채우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목사가 받은 특별한 소명, 하나님의 부르심을 특별한 대우나 특권을 부여받았다는 보증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헛된 명예나 존경에 목말라 해서는 안 된다. 성도들과 동일한 목표와 이상을 추구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상황에 얽매이지 않는다. 문제는 상황을 뛰어넘는 믿음이다. 인간의 한계상황을 해결해보려는 몸부림보다 상황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 그 겸손함.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하나님을 바라는 신앙인이 되어야 한다.

큰 것을 바라기보다는 하나님이 원하는 것을 바라는 자, 작은 것이라도 크게 바라볼 수 있는 눈, 자기 것이라고 취하기보다 모든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아는 지혜가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草福의 풍성함을 누리는 목자상이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롬14:8)

종교와 진리  webmaster@churchheresy.com

<저작권자 © 종교와 진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종교와 진리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신문사소개제보상담광고문의회원전용게시판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영등포구 도신로 244 2층  |  대표전화 : 02)6225-7001~3  |  팩스 : 02)6225-7009  |  청소년보호책임자 : 오명옥
사업자등록번호 : 108-92-16892  |  잡지사업등록번호 : 영등포, 라00387  |  신고증 : 제2013-서울관악-0299호  |  대표 : 오명옥
Copyright © 2019 종교와 진리.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